[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진주시 대곡면 달감이농원 이선미씨
[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진주시 대곡면 달감이농원 이선미씨
  • 배병일기자
  • 승인 2017.03.26 18:2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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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가공·유통 순환 이루는 부농 꿈 앞당겨

▲ 진주시 대곡면에서 달감이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선미씨 부부
농학전공 부부 귀농 7년차…이론 강점 농산물 품질 우수   
온라인으로 유통구조 어려움 극복 ‘팜라인’사업 진행 중 
미래 산업의 안식처 농업 우리 모두의 ‘퀘렌시아’ 됐으면

◆준비 없는 농부의 인생시작
진주시 대곡면 여성농업인 이선미씨(41)는 평범하지 않은 학력을 가진 부부가 농사라는 것을 짓기까지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우리부부는 농학을 전공하여 남편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고 저는 경상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농촌진흥청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며 앞길이 평탄할 것만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어렵게 낳은 아이를 잘 키워 보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 즈음 남편은 모든 일에 회의를 느끼며 사회생활을 힘들어 했다.

둘째가 생기고 남편은 모든 것을 스스로 정리를 하며 저에게 통보를 했다. “귀농을 하자”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던 저는 친정으로 간다는 말에 농사가 뭔지도 모르고 승낙을 했다. 어려서부터 귀하게 사랑만 받고 자란 저는 농사라는 것을 공부만 해 보았지 직접 해본 적이 없었다.

2011년도에 그렇게 아무 대책 없이 시작한 농사는 정말 만만하지 않았다.

10년을 묵혀둔 과수원 1500평을 임대를 받고 농기구라고는 없던 우리는 철물점을 하는 친정에서 삽과 낫, 톱으로 밭을 일구어 나갔다. 책상에서 익힌 지식으로 농사를 지으니 그 농사는 완전 엉망이었다. 첫해는 그렇게 농사를 망치고 둘째 해부터는 주위 선도농가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편은 감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지치기를 배우고 부인은 포장과 선별 등을 배웠다. 그렇게 농사를 시작한지 3년 만에 농지도 3만평으로 넓혔다. 우리에게 가장 큰 강점은 이론이 완벽하다 보니 이론에 실전을 접목하여 작물의 품질이나 수량 면에서 그 누구보다 우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3만평에서 나오는 감들은 제 값을 받지를 못했다. 너무 만연해 있는 우리나라 유통구조의 늪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청과 시장으로 보내었더니 평균가도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우리나라에서 최고가를 받는다는 농가의 감과 비교했을 때 내 작물이 절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인지도에 있었다. 인지도가 없기에 경매가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 이선미(맨 오른쪽)씨가 진주시 강소농 e-비즈니스 활성화 및 후속 교육을 수료했다.
◆시련 속에서 답을 찾다
농사의 규모가 큰 반면 농자재와 농로가 형편없었기에 인건비는 다른집의 배로 들어갔고 감 값은 다른 집의 절반으로 나왔다. 그렇게 농사를 미친 듯이 3년을 지으며 이것은 아니다 싶어 많은 고민 끝에 진주시농업기술센터와 경남농업기술원으로 영농교육을 받으러 나갔다.

교육을 하나하나 듣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인터넷 판매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강소농 e-비즈니스 교육을 들으며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공부는 많이 했지만 컴맹에 가까웠던 나였다. 농사로 돈을 벌어야 겠다는 욕심이 생기니 컴퓨터는 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저의 일상생활들을 얘기하다 보니 여러 방송국들에서 연락이 와서 방송출연도 4편이나 하고 잡지사와 신문에서 취재도 해서 보도되었다.

또 연중 돈이 순환되게 하기 위해 경영체계와 유통을 바꾸었다. 경영체계는 한작물 농업에서 다작물 농업인 복합영농으로 변환해서 봄에는 두릅을 시작으로 매실, 구지뽕, 단감, 대봉으로 일년 큰 농사는 경영하고 자그마한 100평의 하우스에 쌈채소와 샐러드용 채소를 심어 지역 로컬푸드에 납품을 시작했다. 유통은 네이버 농가 직거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네이버에서 달감이 농원만 검색해도 제 농산물을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경영체계를 바꾸면서 단감과수원도 1만5000평으로 줄여 농업에 더 자신이 생겼다. 컴맹인 제가 지난해에는 경남 정보화 농업인대회에 IT체험 수기 부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귀농하고 가장 뜻깊은 일을 한 것은 전라도 완도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귀농 교육을 진행했고 그리고 더 뿌듯한 것은 2016년 진주시 국제농식품박람회에서 진주시 홍보부스의 총 기획과 진행을 저희 부부가 하였다는 것이다.

▲ 이선미씨 EBS 한국기행 프로그램 방송출연 모습
이것은 저희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꿈꾸고 있던 일들의 일부분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고 저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많은 농업인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경험들을 토대로 나 혼자 잘 살겠다가 아니라 이웃 농업인들과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해 2016년에는 진주시 강소농 자율학습체 회장이 되어 13농가와 함께 ‘팜라인’이란 이름으로 지금 농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유통체계를 변화시키고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2016년 13농가는 각각 네이버 쇼핑몰에 농가별 홈페이지를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관리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2017년에는 공동 홈페이지를 만들어 공동 판매를 이어갈 예정이다.

꿈이 거창하기에 이 또한 이루어져서 진주시와 경상남도의 많은 농가들에 귀감이 될듯하다.

▲ 이선미씨 부부가 2016년 진주시 국제농식품박람회에서 진주시 홍보부스 총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농업을 하며 나를 찾는 길
농사는 노동이다. 절대 운동이 될 수 없다. 제가 농사를 지으며 꼭 해야 되는 것 두가지를 찾았다. 그것은 운동과 독서이다. 나를 소중히 잘 다듬고 만들때 나의 직업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든 노동을 했다고 해도 나를 포기하면 안 된다. 사람은 외면뿐 아니라 내면으로도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 농사를 그렇게 힘들게 짓는데 무슨 또 운동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운동은 꼭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몸의 근육들이 다 움직여져서 흔히 말하는 골병이 들지 않는다.

또 농사를 짓다보면 매일이 반복되고 내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을 하면 생각할 시간이 주어져 정리가 된다. 운동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도 계시고 젊은 친구도 있고 나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 삶이 더 소중하고 보람되게 느껴져 자존감 또한 높아진다. 내가 나를 인정받게 만드는 것은 내가 나를 가꾸는 것이다.

일에 빠져서 하루하루 힘겹게 지쳐서 살 때는 몰랐다. 그러나 이젠 농사를 어찌 지어야 될지 알고 어떻게 팔아야 될지를 알고 내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사용 할 줄을 안 지금은 이곳이 내 삶의 ‘퀘렌시아’이다. 퀘렌시아란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저에게 이곳 시골 작은 마을과 나의 농장, 나의 집은 저의 영혼의 회복장소인 퀘렌시아이다. 농업이 우리 모두의 퀘렌시아가 되길 빌어본다. 농업은 우리의 미래 산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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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 - 조해숙 농촌지도사 (진주시농업기술센터)
석사출신 부부의 부농의 꿈 실현 

진주시 대곡면의 오지마을에서 부농의 꿈을 실현하는 열정적인 젊은 농부가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진주시 e-비즈니스회 회장도 맡고 있는 이선미씨는 앞서가는 정보력을 무기로 도전과 열정을 농촌에 쏟아 부으며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남편은 꼼꼼하고 차분하지만 아내는 좀 털털하고 인정이 많아 단감 수확만 하면 이집, 저집 헤집고 다니기 바쁜 그런 부부들이다.

귀농한지 7년차인 이들 부부가 항상 공부하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이론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습하고 배우면서 다져진 실력이 이제는 연중 생산·가공·유통의 순환이 이루어지게 하여 부농의 꿈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 기대한다. 배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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