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칼럼-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3.28 18: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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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칠푼짜리 돼지 꼬리처럼 살지 말고, 어떤 상황과 압력, 이해타산에도 휩쓸리지 말고, 현재의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라는 말이다. 자신이 배운 바를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여 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실천 없는 배움은 돈과 시간낭비일 뿐이다. 성공을 바란다는 사람이 전력투구는 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간다면 야밤에 나와 초생 달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배움의 힘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다.

자신의 실력을 남용하여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이익을 침탈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강력한 지식의 힘을 좀 더 깊고, 넓은 마음으로 이웃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나가자. 삶은 창조적으로 살아서 움직여야한다. 배움을 실천하는 것은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이며, 변화 없는 삶은 침체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 몸이 죽으면 한줌 흙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허둥대고 산단 말인가! 자신을 바로 보고 인식하는 인지능력을 길러가자. 모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느끼는 순간에만 지식이 숨 쉬게 된다.

수행자가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배운 것을 바르게 실천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우리의 지혜는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는 칼이 되어야하고, 왜곡을 바로 잡는 빛이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와 기억력의 소유자라도 공부할 때는 메모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조금 전 들은 말도 잊어먹기 쉽다. 또한 감정의 동물이어서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도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시간이 지나서는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파장을 보며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후회하면서도 말이다. 대나무의 죽순은 올라올 때부터 왕대죽순은 크고 굵지만 졸대죽순은 작고 가늘다. 대나무는 힘이 넘치는 청년과 같이 곧게 자라며, 선비의 고결한 절개처럼 유연하고 강하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래서 선방에서 택한 장군죽비의 재료가 대나무다. 그런 대나무도 약 100년을 살다가 대 꽃이 피면 죽는다. 우리도 100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루하루를 내편으로 만들어서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공자로 살아갈 것인가? 적당히 요령 부려가며 실패자로 살다가 말 것인가? 아무렇게나 살지 마라. 배움에 충실한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는다.

될 성싶은 사람의 언행은 싹수가 있고, 안될 사람의 언행은 싹수가 노랗다. 누구나 젊은 날, 패기의 열차를 타고 속도감 있게 돌진해 왔지만 어느덧 삶의 재고가 바닥이 보인다.

서로가 웃는 모습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자. 초지 한 장이 바람을 막아주듯 보잘 것 없는 것도 배워두면 요긴하게 쓰일 때가있다. 노력은 않고 성공 자들 흉내만 내다보면 촉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게 된다. 미래도 걱정하지마라. 사람들은 장래 뭘 먹고 사느냐며 걱정을 많이 하지만 새들도 먹고 살고, 짐승도 잘만 먹고 사는 것을 보라.

숨을 쉬고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천억 대 재산을 보유하고서도 정신적 불안 심리를 해결 못하면 헐벗고 사는 거지다. 야성적 개성과 초월적 특질을 가진 인물이 되라.

아무리 좋은 씨앗도 바위위에 떨어지면 싹을 틔울 수 없다. 당신은 이미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기에 남에게 꿀릴 것도 무시당할 것도 없다. 자신을 더욱 낮추면서 자기 길만 묵묵히 가라. 삶에 몹시 지친사람은 눈썹도 짐이 되겠지만, 아무리 자신을 더욱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도 그대의 영혼은 오염되지 않는다. 지독하게 홀로 있는 텅 빈 시간을 가져보라.

심리적인 평온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적인 자신감을 통해 확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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