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죽는 날까지
아침을열며-죽는 날까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4.04 18: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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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죽는 날까지


우리나라의 대표 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이 자신을 소개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하루에 원고지 3장을 쓴다. 그것이 내게 잘 맞다. 하루에 3장을 더 쓰면 삼일을 앓는다. 마찬가지로 하루에 3장을 덜 쓰도 3일을 앓는다. 그러니 나는 꼭 하루에 3장씩 원고를 쓴다’ 그 말씀을 들은 건 벌써 몇 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매일이다시피 상긴한다. 그 말씀을 상기하는 건 대개는 고통이다. 일일삼매는커녕 세달삼매도 못쓰니 스스로 약이 바짝바짝 올라 고통인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대 문호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연세가 구순인데도 매일 작업을 하고 일년에 최소 장편 한 편은 탈고 하신다고 들었다. <신 인간혁명>이라는 30권이 넘는 대하소설 집필을 계속하시고 계신다. 그대님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이다지도 작아지는지. 이 화창한 봄날에 활짝 핀 노오란 개나리를 보자니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갱년긴가, 진정 우울할 것인가??

두 달에 한번 있는 문학인 모임에 참석하고 차를 타고 돌아오며 차창 밖의 수양버들의 연한 새싹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물론 두 분 선생님과 모임에서 만난 문우들을 상기하면서. 어떤 문우는 자신의 여태까지의 뒤안길을 발표했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병이나 인생의 훼방꾼과의 싸움에서 성공해내는 극복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용기를 돋운다.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해 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또 자신의 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딱 그만두고 오래 접어두었던 꿈을 붙들어 이뤄내는 이야기도 언제나 듣는 이를 신나게 한다.

등단한지 어언 20년이 가까웠다. 그 중간에 단편 두어 편과 중편 한 편을 새로 썼다. 그리곤 습작기간에 써놨던 장편 원고 세 편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중간에 칼럼집을 한 권 냈다. 다른 방법을 제때 강구했기에 다행이지 글을 쓰서 먹고살기를 고집했더라면 나는 진작 굶어죽었다. 용케 살아남았다고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 돌아보니 작가인 세월보다는 작가 아닌 세월이 훨 많았다. 쓰야 작가라면 말이다. 작가가 되고자 마음먹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작가이고 싶었다. 매순간 작가이고 싶다. 백번 양보해서 매일 작가이고 싶다. 그러면 매일 소설을 쓰야 한다.

많이 쑥스럽지만 더워서 학학대기 전에 제법 다기지게 결의를 한다. 나, 강영은 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의 방식을 몸에 익혀 매일 원고지 3장씩 쓰는 걸 원칙으로 쓰면서 이케다 선생님처럼 최소 90살까지 이 결의를 실천하며 살 것이다! 아, 죽는 날까지!!! 많이 쑥스럽다. 또한 많이 대견하다. 60이 코앞인데 이런 결의를 하게 되다니. 개나리가 유난히 노랗다고 했어, 애믄 개나리 탓이라도 해야 덜 무안할 것인가? 그렇지도 못하다. 일상의 일은 하나도 안 줄이고 덜컥 죽는날까지 매일 원고지 세 장씩을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버렸으니. 무안보다 걱정이 앞선다.

며칠 전에는 몸살이 된통 났었다. 몇 년에 한 번씩 달려드는 몸살이었다. 시름시름 앞뒤 이틀 앓고 딱 하루는 된통 앓고나면 끝날 아픔인데도 결정적 그 하루는 꼼짝을 못한다. 마치 곧 어떻게 될 것처럼 열이 펄펄 끓고 입에서 단내가 나고 침도 못 삼키게 목이 마른다. 에라 모르겠다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웬걸, 밖에서 안에서 불러 제끼는데 진짜 환장하겠다는 말이 실감났다. 딱 미치겠는 거였다. 내가 먹고 산다는 핑계로 벌여놓은 일상이 얼마나 다사다난한지 새삼 깨달았다. 이런 판국에 일일삼매 원칙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또 벌였으니, 악!! 비명일밖에.

그러자, 비명이 나오면 비명을 지르고 울음이 나오면 울면서 작가의 길을 가자.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잖은가. 내가 좋아 내가 나로 사는 내 인생이다. 세월이 좀 흐르고 숨을 거두어들여야 하는 그날이 되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 여한없이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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