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사천시 축동면 용산마을 송춘자씨
[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사천시 축동면 용산마을 송춘자씨
  • 배병일기자
  • 승인 2017.04.16 18:13
  • 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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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서 태어나 평생 농촌 사랑하며 벗 삼아

▲ 사천시 축동면 용산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송춘자(오른쪽)씨
58년째 농촌마을 토박이 여성…평생 농촌사랑 한길 인생
산업화 농업 경쟁력 강화 단호박·기능성 쌀 등 재배 시작
힘든 시련 겪으며 용기·지혜 배워…효 실천 표창장 귀감  
용산마을 올해 창조적 마을 가꾸기 선정 변화의 바람 기대

◆평생 고향 농촌을 지키는 애향심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을 사랑하고, 평생 농촌을 벗 삼아 살자”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여성농업인이 있어 화제다. 그 주인공은 사천시 축동면에서 살고 있는 송춘자(58)씨 이다. 그는 태어나면서 현재까지 고향인 사천시 축동면 용산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고향이면서 삶의 터전인 용산마을을 58년째 지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도시 등 외지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조용한 용산마을에서 58년째 살고 있지만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고향이 좋고 농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농촌생활을 지켜주는 버팀목은 역시 남편이자 용산마을 이장인 신동준(61)씨. 이들이 평생 한마을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와준 부부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는 평생 동안 농촌에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힘든 적도 많았지만 보람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농사 짓는 동안에도 틈틈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과 다양한 취미생활 등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농촌지역 생활개선회는 그의 생활 일부가 되었다. 생활개선회는 농촌여성지도자로서 농가생활의 질 향상을 위해 농촌생활개선사업을 선도적으로 실천하고, 지속적인 농촌발전과 농촌여성의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1994년 11월 2일 농촌진흥청에서 사단법인체로 등록된 농촌여성단체이다. 그는 이웃의 권유로 지난 1995년 사천시 생활개선회 축동면지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 후 농촌지역 주민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주거생활 개선사업을 벌였다. 본인의 농사일도 바쁘지만 일손이 부족한 노인·결손가정을 찾아가 노동력을 보태기도 하고, 반찬 만들어주기, 주택개량, 방범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였다. 또 농촌지역 여성들의 생활여건 개선과 취미활동을 돕기 위해 천연염색과 다양한 음식 만들기, 목공예 만들기, 무공해 비누제작 등을 배우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농촌지역 주거여건 개선에 적극 활동한 공로로 2007년 축동면 지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2011년에는 한국생활개선회사천시연합회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농촌발전과 여성능력개발향상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생활기술과제를 보급해 지역사회 발전을 선도했다는 것이 수상의 이유였다.

그의 농촌봉사활동 동력은 생활개선회 뿐만 아니라 4-H에서 출발했다. 4-H는 실천을 통해 배운다는 취지로 설립된 세계적인 농촌지역 청소년 단체이다. 그는 18살 때부터 4-H회원으로 가입해 지금까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건강(Health), 손(Hands)을 의미하는 영단어의 앞 글자를 의미한다. 이 단체의 로고는 네잎클로버이며 각각의 잎사귀는 4개의 H인 지(智), 덕(德), 노(勞), 체(體)를 상징한다. 그는 이러한 4-H의 이념을 바탕으로 농촌에 사는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농촌생활이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건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힘들 때마다 4-H회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영농활동에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의 대가로 그는 사천시 4-H본부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남보다 앞서 가야 산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켜본 농촌이 산업화로 붕괴되는 현장을 몸으로 느꼈다. 농산물 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비료와 농자재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재료비는 올랐는데 상품가격은 그대로다 보니 농민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관행적으로 벼농사를 짓다보면 빚만 늘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FTA체결 등으로 국제경쟁력이 없는 품목의 농사를 짓는 것은 스스로 손해를 자초하는 길이었다.

그는 2000년부터 경쟁력 없는 농사 품목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 첫 번째가 축산이었다. 그 당시 전국 농가마다 소를 키우다 보니, 마리수가 넘쳐났다. 비싼 사료를 먹여 키운 소를 헐값에 팔아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소값 파동으로 자살하는 농민도 생겨났다. 그는 집에서 키우던 소 7마리를 모두 팔았다. 경쟁력이 없는 축산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 다음에 포기한 것은 관행적인 벼농사였다. 풍년이 들면 오히려 쌀값은 폭락했다. 즐거워야 할 농심은 더 찢어졌다. 더욱이 외국쌀까지 수입하는 상황에서 1ha 미만의 농사는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었다. 이들 부부가 경쟁력 없는 작목은 버리고 포기한 대신, 집중해야 할 대상을 찾은 것이 단호박 재배였다. 2006년 사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한 영농교육에서 힌트를 얻어 벼농사처럼 큰 노동력이 들지 않으면서 도시민들이 기호식품으로 선호하는 단호박 재배를 선택했다. 당시만 해도 단호박은 수출품목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시들했다. 하지만 정성들여 키워 시중에 판매하다보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2010년부터 단호박을 찾는 소비자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단호박을 찾는 고객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991㎡로 시작한 단호박 농사가 2010년부터는 면적을 두 배로 늘렸다. 가격도 좋았지만 판로확보가 용이해진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국내시장에서도 단호박 소비가 늘자 지역농협에서 로컬푸드 품목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농협에 팔아주는 시스템이다. 그는 단호박 재배로 노동력은 절감하면서도 소득은 크게 늘리는 효과를 거뒀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관행적 벼농사를 포기한 대신 대체작목을 생각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흑미와 녹미였다. 이른바 ‘기능성 쌀’을 재배하기로 했다. 일반 쌀보다는 건강에 좋은 성분이 많고, 색깔도 특이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 기능성 쌀은 실제 수익도 일반 쌀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고 한번 먹어본 소비자들의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시련도 물리치는 용기와 지혜
그의 농촌생활이 모두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트랙터를 몰고 고추밭 정지작업을 하던 남편이 큰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트랙터가 전복돼 5m 아래로 떨어졌다. 남편은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었다. 당시 119까지 출동해 진주에 있는 큰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무릎수술과 함께 1년간의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남편의 병간호도 문제지만 농사도 큰 타격을 입었다. 당장 농촌의 큰 일꾼인 트랙터와 콤바인, 경운기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단호박을 수확하고 농협으로 납품하는 일도 두 배로 힘들어졌다. 논을 갈고 거름을 옮기는 이른 당분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급한 일은 처리했다. 평생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여성의 몸으로 1년 동안 병간호와 농사일을 처리하다 보니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그러나 농촌에 사는 이상 농사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과 4-H정신으로 견뎌냈다.

그는 그동안 농기계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기본적인 운전방법을 익혔다.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농기계 조작도 막상 부딪치니까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지혜가 생겨났다. 지나고 보니 축산을 포기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소를 키웠으면 집을 비울 수 없고 병간호에 큰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힘든 1년 이었지만 남편도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농촌생활에 있어 남편의 자리가 크다는 것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두 배로 키운 한해 였다.

▲ 송춘자씨는 농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복합 영농을 실시하고 있다.
◆농촌에 사는 보람과 인간의 도리
부부는 58년째 용산마을에 살고 있다. 용산마을은 예전에 새끼를 꼬아 가마니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빈촌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단호박, 기능성 쌀, 고추 등 특용작물 재배로 축동면 내에서도 소득이 높고 잘사는 마을로 부상했다.

또 용산마을은 2017년 ‘창조적 마을 가꾸기’ 시범마을로 선정되었다. 창조적 마을 가꾸기는 농림축산식품부 주관으로 실시된 공모사업이다. 용산마을은 정부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만큼, 지원된 예산으로 마을 당산나무 보전과 우물(새미골) 복원, 도라지꽃 길 조성, 마을경관개선 사업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용산마을은 뒷산이 용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용의 상반신에 해당한다는 전설이 있다. 용산마을의 전설과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사업계획들이 공모사업 선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용산마을에는 최근 들어 소득이 높아지고 경관이 개선되는 등 변화바람이 불고 있다.

그 변화의 이면에는 송 부회장의 다양한 농촌 생활개선노력과 8년째 용산마을 이장을 맡은 신 씨 부부의 부단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 부부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부창부수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부부가 결혼할 당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물론 시할머니와 시할아버지도 한집에서 모셨다.

어지간한 효심 없이는 한 집에서 생활조차 힘들었지만, 부부는 ‘효’라는 인간 도리를 다해 어른들을 모셨다. 이러한 정성이 알려지면서 남편의 집안 평산 신 씨 종친회는 지난 2002년 어른들을 잘 모신데 대한 보답으로 송 부회장에게 효행 패를 수여했다. 또 송 부회장은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경남도지사로부터 효행에 대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힘든 농촌을 지켜가는 이들 부부의 가훈은 ‘정직·성실하게 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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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 - 고나연 농촌지도사 (사천시농업기술센터)
도전하며 어려움 극복하는 강인한 여성

송춘자씨는 태어나면서 58년째 축동면 용산마을을 지키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농업인이다. 본인의 농사일도 바쁘지만 마을에 일손이 부족한 노인·결손가정을 찾아가 노동력을 보태기도 하고, 반찬 만들어주기, 주택개량, 방범활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산업화로 농촌이 붕괴되고, 농산물가격은 점점 하락하지만 비료와 농자재 가격 등 재료비는 점점 상승하는 어려운 농업환경에서 이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경쟁력이 있는 작물 발굴에 힘썼으며, 2000년부터 경쟁력이 없는 축산과 관행적 벼농사를 과감히 포기하고, 단호박, 양배추, 고추, 생강, 녹미, 흑미 등 복합 영농을 실시했다.
2010년부터 단호박 소비가 늘어나면서 지역농협에서 로컬푸드 품목으로 선정되어 납품하게 되며 판로확보가 용이해지면서 재배면적을 두 배로 늘렸으며, 기능성 쌀(흑미, 녹미) 역시 일반 쌀에 비해 수익도 높고 우수한 소비자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0년 트랙터를 몰고 고추밭 정지작업을 하던 남편이 트랙터가 전복돼 5m아래로 떨어지면서 남편은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러한 시련에도 송춘자씨는 낙담하지 않고 여성의 몸으로 남편의 병간호와 함께 직접 농기계 조작도 배워 농사일을 하며 1년을 버텨낸 강인한 여성이다.

송춘자씨는 결혼할 당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물론 시할머니와 시할아버지도 한집에서 모시며, 별세하시기 전까지 함께 살며 효를 실천했다. 이러한 정성이 알려지면서 남편의 집안 평산 신 씨 종친회 및 경남도지사 등 3차례에 걸쳐 효행패 및 표창장을 수여 받았다. 배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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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원 2017-04-18 14:46:39
신문에 나온 송춘자(58),신동준(61)의 손자입니다. 저의 이름은 신희원이며 신희원(10) 손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