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1)
칼럼-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4.17 18: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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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1)


이 세상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주역’만큼 때를 강조한 책도 드물다. 64괘 가운데 첫 괘는 건괘(乾卦). 우주 만물과 모든 인생사는 시간의 절대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이란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로 원(元)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의 혼돈의 시간, 형(亨)은 천지 창조로부터 성장 단계의 시간, 이(利)은 결실과 수확의 시간, 정(貞)은 왕성하던 것이 소멸하는 쇠퇴의 시간을 나타낸다. 계절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四季)에 해당하며 사람에게는 임신기간, 청소년기, 중장년기, 죽음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한다. 청소년기에는 색을 경계해야 한다. 중년에 이르면 다툼을 경계해야 한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이미 얻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얻은 것은 뭐든 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 이와 같이 때에 따라 사람은 처신도 달리해야 한다. 특히 사람은 때를 잘 알고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때가 맞지 않으면 일이 성사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때가 되었어도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일은 어그러지게 마련이다. 건괘에 따르면 너무 일찍 뜻을 펼쳐서는 안 된다. 이를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 한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라는 말로 설령 때를 만나 실제로 일을 도모하더라도 조력자(인맥)가 있어야 이(利), 즉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주역’에서 ‘대인’으로 묘사되는 조력자는 하늘의 도를 얻으려는 사람에게 필수이다.

현룡재전(見龍在田) 이견대인(利見大人): 여기서 현룡은 시간, 재전은 환경, 대인은 인맥의 중요성을 뜻한다. 현룡에 이어 물위에서 뛰노는 약룡(躍龍),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룡(飛龍), 그리고 마지막이 항룡(亢龍)의 단계다. 항룡은 하늘까지 올라간 용이므로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내려올 일만 남았다. 즉, 항룡은 물러날 때를 거부하고 계속 자리에 연연하는 인간을 비유한다. 항룡유회(亢龍有悔): 높은 곳에 있으면 곧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높은 자리를 고집했다가는 좋지 않은 일만 당할 뿐이다. 그래서 이 점괘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굳센 항룡도 이내 ‘여윈 돼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을 지닌다. 그래서 행동을 조심하고 경솔함을 삼가야 한다. 여기서 ‘주역’이 단순히 점으로 운명을 예언하는데 그치지 않고 물러날 때를 아는 처신에 대한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역’에서 성공의 첫 번째 열쇠는 ‘때’이고 여기서 다루는 핵심은 ‘기다림’이다. 이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고 시기를 저울질하는 ‘적극적인 기다림’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시기가 오면 머뭇거리지 말고 모험 정신을 발휘해야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조심할 것은 과섭멸정(過涉滅頂): 지나치게 무리해서 건너면 반드시 파멸한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무모한 모험을 감행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리더의 덕목은 물러남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물러남의 지혜는 둔괘(遯卦)에 나온다. 합당하게 물러나는 형태로 세 가지를 드는데 먼저 ‘호둔(好遯)’은 때를 잘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다. ‘가둔(嘉遯)’은 주위의 칭찬을 받으면서 물러나는 것으로 흔히 정상에 있을 때 또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 때 물러나는 것이다. ‘비둔(肥遯)’은 준비를 마친 뒤에 물러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둔미(遯尾)’는 물러날 때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물러나는 것이다. 적당한 때를 읽지 못해서, 또는 때를 알았다 해도 당장의 직위나 이익 때문에 물러날 때를 놓친 경우다. ‘계둔(係遯)’은 집단적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으로 정치인들이 사건에 휘말려 단체로 물러나거나 회사가 망해 사원들이 모두 퇴직하는 경우다. 주변에 보면 학식이나 지혜가 풍부하지만 사회적인 지위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 뜻하는 ‘명이괘(明夷卦)’는 밝은 기운이 상처를 입은 모습이니, 지혜는 있으나 하늘의 때를 얻지 못한 군자의 형상이다. 이러한 사람을 ‘명이지자(明夷之者)’라고 한다. 때를 얻지 못한 현자, 지혜를 갖추었으나 이를 세상에 나아가 펼치지 못하는 군자다. 반면 ‘진지자(晉之者)’는 천시(天時)를 얻어 자신의 경륜과 사상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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