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산책길 단상
아침을열며-산책길 단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14 17:5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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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산책길 단상


내가 사는 동네에는 멋진 벚나무 가로수길이 있다. 나는 이 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즐긴다. 지난 달, 만개한 벚꽃을 보며 그 길을 걷던 것은 작지 않은 행복이었다. 흩날리던 꽃보라도 너무너무 장관이었다. 이제는 그 꽃들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지에는 어느새 신록이 가득하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신록이 아무리 좋은들 꽃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야 있으랴. 사람들의 눈길을 보더라도 그건 명확하다. 꽃은 특별히 주목을 끌지만 신록이 따로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늘, 산책길에 눈에 동그래졌다. 이건 자연의 또 다른 선물인가? 어디서 날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벚나무 아래 마치 일부러 심어놓은 것처럼 노랑선씀바귀라는 잡초 꽃이 하나 가득 피어났다. 수십 그루 거의 모든 나무들 아래가 다 그렇다. 와우,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쪼그려 앉아 사진도 찍었다. 나는 워낙에 잡초 꽃을 좋아한다. 민들레나 제비꽃도 사실 그런 축이다. 심지어 개망초 같은 것도 하나 가득 모여서 피어 있을 때는 메밀꽃 못지않다. 특히나 길섶에 가득 모여서 피는 봄까치꽃 같은 것은 보일 듯 말 듯 앙증맞은 크기지만 그 파랑과 하양의 조화는 여느 화초 못지않게 예쁘다. 나는 그런 것들을 하염없이 좋아한다.


그런데 한 시간 쯤 산책을 즐기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 한 번 눈이 동그래졌다. 응? 그 노란 꽃들이 그 사이에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옆에는 뽑아서 쌓아놓은 그야말로 풀무더기가 수북하다. 그 무더기엔 그렇게 예뻤던 조금 전의 그 노랑선씀바귀꽃들의 사체가 이미 생기를 잃고 시들어 말라간다. 저만치 보니 ‘잡초제거 작업’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상황은 즉시 이해되었다. 시의 사업인지 구의 사업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거리관리 관련 예산을 집행 중일 것이다. 인부들은 거의 노년층이다. 그러니 무슨 복지 관련 혹은 일자리 관련 사업일지도 모르겠다.

그분들 입장에서야 말끔하게 뽑아서 일당을 받아가면 그만이겠지만, 왜 하필 지금인가. 그대로 둔다면 적어도 한 일주일 그 꽃들이 지나는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을 터. 그걸 좀 기다려줄 수는 없었을까? 담당 공무원들에게는 철학자의 이런 미학이 사치일까?

비록 공무수행일지라도 그것 역시 사람의 일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그 담당자가 한번쯤 현장에 나와 보고, ‘음, 지금은 꽃이 예쁘게 피었으니까, 시들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다음 주쯤 작업을 개시하면 좋겠군,’ 하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가 사무실에 돌아가 상급자에게 그렇게 보고를 하고 상급자도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그 얼마나 인간적인가. 나는 그런 공무원사회를 기대한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는 멋진 공원이 하나 있다. 그 공원은 원래 정수장이었다. 용도 폐기된 그곳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녹슨 옛 기계들도 일부 공원의 구조물 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이 공원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잘 꾸며진 공원도 공원이지만, 흉한 정수장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그 발상이 참으로 가상한 것이다. 모르긴 하지만, 어떤 한 공무원의 착상에서 그 일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공원을 거닐 때마다 아내에게 ‘이 공원엔 그 담당 공무원의 동상을 세워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곤 한다. 그건 진심이다.

일은 어차피 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미학이 깃들면 그 일의 결과가 작품이 된다. 매달 월급날에 명세표를 보며 공제되는 세금액 때문에 투덜대지만, 그 세금이 그런 공무원에 의해 미학적으로 사용되어 어떤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나는 그 세금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잡초 꽃도 꽃이다. 그러니 굳이 그 꽃을 뽑아내는 데 내가 낸 세금을 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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