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아픈 이별, 세월호
도민칼럼-아픈 이별, 세월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17 18:07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

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아픈 이별, 세월호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종류의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가장 충격적인 이별은 아마도 부모님을 여의였을 때일 것이다. 평생 옆에서 나를 코치해주실 것만 같았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세상은 끊어져 버린 노끈을 쥐고 있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삼년 전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던 그 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갔다. 병실 TV 방송으로 계속되는 세월호의 모습을 보며 전원구조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는 침몰되었고,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던 우리 아버지는 그로부터 두 달 정도를 더 살다 가셨다. 그 때의 충격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친상보다 세월호 침몰이 더 컸다. 병환 중이셨던 아버지를 보내드린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세월호는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앞두고 애환과 교감을 나누면 아픔의 완충이 생겨서 어느 만큼은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아버지와 두 달의 완충시간을 통해 감사함과 사랑함과 더 좋은 자녀가 되지 못했던 반성까지도 세포 사이마다 새길 수 있었다. 가족 모두 함께 하면서 아버지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일과 세월호가 비슷한 시기에 맞물리면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별의 큰 아픔으로 느껴졌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일은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폐를 잃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면, 세월호는 심장을 잃은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그런 것 같았다. 비록 나의 가족은 아니지만 마치 내가 그 곳에 있었던 것 같은 묘한 공감이 사무치게 들었다. 아마 온 국민이 그랬을 것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수년 간 학생들을 국내외로 데리고 다녔던 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고통스런 공감으로 괴로웠다. 또한 나의 아이들과 저런 위기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자구책을 마련해서 보호해야하나 심각한 우려에 빠졌다.

아픈 시간이 삼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있다. 가족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해서라도 충분한 위로와 치유가 있어야 한다. 해리포토 작가 조앤 롤링이 하버드 졸업식에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또한 ‘지위와 영향력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배려할 수 있는’ 인성을 갖춘 인재들이 되기를 기원했다. 많은 고통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지도자를 뽑게 되었다. 최근 매일 접하는 뉴스 중 오랜만에 따뜻한 미소와 언행의 모습을 갖춘 지도자를 보며 소소한 위로를 받는다. 특히 세월호 사고로 인한 허망함을 달래주는 조치는 늦었지만 다행이다. 삼년의 시간이 지나며 신체는 스러져 없어지고 이제는 치아와 작은 뼛조각으로라도 존재를 확인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가족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이별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