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
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삶의 스펙트럼
성공이라는 말, 누구나 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가족, 주변의 이웃들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살아왔다. 당장 내일 먹을 게 있고 무탈하게 평범하게 살면 그것이 잘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초들에게 삶은 늘 팍팍하고 고단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 할머니, 부모님과 두메산골에 살아서인지 아이들에게 어릴 적 우리 집에 수도가 언제 들어왔고 전기가 언제 들어왔고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구식이다. 할머니에겐 이러한 신문물이 신기하고 최고의 사건이어서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읊으셨던 것이 내 기억 속에 뿌리박혀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안 본 지 10년은 된 것 같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바보상자라는 말이 딱 맞았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멍하게 반사적으로 사는 듯한 모습이 보여서 싫었나보다. 아니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나의 현실과 아주 다른 듯 같은 듯 헷갈리는 텔레비전 속의 세상은 대리만족하기에는 좋았다. 유익한 프로그램도 많지만 대부분은 내게 불필요한 것이고 시간을 죽이기 위한 핑계이고 희생양이었던 것 같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 발전도 제법 이루고 대중매체가 우리의 삶을 대중적으로 이끄는가 하면, 한편 대중에게서 벗어나면 뭔가 나 자신마저도 다른 것이 이상한 것이 되는 양 느껴졌고 군중심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로웠을 것이다. 너와 나의 다름이 나쁜 것이 아닌데 ‘남들처럼 왜 안 하냐’ 나무라고 비교하고 아직도 고쳐야 할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요즘 난 고비를 겪고 있다. 그 일로 인하여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빈 틈이 많아서 늘 부족한 것은 맞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도움도 별로 원하지 않았다. 뭐든지 스스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늘 힘들고 외로웠다. 이 감정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스로 그은 타인과 나 사이의 선때문일지도...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하면 좋겠어’ 하고 가라는대로 가라하면 까짓거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게 무책임하게 내 삶을 살았나보다. 나에게 가르쳐줄게 많았다는 듯이 삶은 내개 고비를 주었다. 스트레스지수가 최고 지점으로 치닫고 있다.
성공이라는 것이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장기목표를 세우고 단기목표를 차근차근 이루는 과정을 통하여 결과로 다가왔을 때 가장 안정감이 있고 성취감도 클 것이다. 만약 돈, 지위, 권력 등 성공 자체가 결과적인 목표로 단기간에 이루어야할 목표가 되었을 때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총동원하여 결과치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곧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을 감추려고 거짓에다 거짓을 꾸며낼수록 자가당착에 걸려들고 만다.
아이들 키울 때는 책 한줄 읽을 여유도 없더니 중년이 되고 아이들이 자라 점점 떠나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나만의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좋다. 하지만 지금 난 또 그 시절의 아이들의 살 냄새와 평화로움, 행복한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을 가져오며 시간의 벽을 넘나드는 것, 이것이 곧 인생인가?
삶에는 행복한 모습만 오롯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고 어떤 입체적인 구조물과도 같은 것. 하나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가지를 겪을 수도 볼 수도 있는 것. 다만 그것을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바라볼 것인가는 내가 매듭지어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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