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곽재우 홍의장군 순국 400주년
진주성-곽재우 홍의장군 순국 400주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5.31 18:11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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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곽재우 홍의장군 순국 400주년


오늘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의병투쟁을 전개하다 순절(순국)또는 공을 세운 모든 이들을 기리는 날이다.

곽재우(郭再祐)장군을 홍의장군이라고 배웠다. 곽재우(1552~1617)장군은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서 태어났다. 장군의 춘추 40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붉은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적을 물리쳤다고 전해 온다.
곽재우 장군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원문상으로 약 251회 기재되었고 선조 때 84회 영조 때 6회. 정조 때 3회 정도 기재됐다.

선조실록 25년 6월 29일조에 보면 ‘젊어서 활쏘기, 말타기를 연습하였고 본래 부유하였는데 재산을 다 모아 의병을 소모해 왜적을 섬멸키로 했으니 그들의 뜻이 가상합니다. 관직을 제수하기를 청합니다하니 곧 유곡찰방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됐다.

같은 해 8월조에 보면 통정대부 형조정랑에 제수되었다. 선조 26년 4월15일조에 보면 성주목사에 제수되었으니 처음으로 목민관이 되었다.

그 해 12월에 진주목사에 제수되었고 선조 33년 2월에 경상병사직의 사직 상소문을 올리고 승낙하기 전에 멋대로 소임을 버렸다하여 전라도 해변으로 귀양가게 된다.

정유재란 때 화왕산성을 지켜 남쪽 사람들이 모두 곽재우를 으뜸이라고 합니다라는 기록도 있다.
선산부사, 안동부사를 거쳐 선조 40년에 경주부윤을 삼았라고 했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임금의 전지를 들고 곽재우를 찾으니 아들 2명과 함께 어렵게 살고 단벌 옷 뿐이기 때문에 상경하지 못한다고 하자 왕이 옷, 말을 하사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인들이 선정한 임진 4명의 충신에 들었고 동인들이 선정한 3대 의병장에 포함될 정도로 파벌을 초월해 추앙받은 훌륭한 분이다.

장군의 호는 망우당이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곽장군은 오운(1540~1617)수병장과 같은 해 세상을 떠났는데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에 세워진 충익사에 가보면 의병부대 군무에 참전한 분들 명단이 새겨져 있다. 곽재우·윤탁·박사제·오운·이운장·배명신·심대승·정연·권란·정질·허언심·노순·강언룡·허자대·심기일·안기종·조사남·주몽룡 등 18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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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선 2017-06-01 10:45:13
곽재우 장군 만세 만만세 아름다운 희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