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우리 집 수탉의 일장춘몽!
도민칼럼-우리 집 수탉의 일장춘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6.19 18: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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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우리 집 수탉의 일장춘몽!


연초에 조류독감(AI)으로 전국의 많은 닭이 살처분되고 계란 값과 닭값이 제멋대로 오를 때 아내와 나는 집 뒤 텃밭 모퉁이에 닭장을 짓고 닭을 직접 길러 질 좋은 ‘유정란’과 닭고기를 자급자족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닭장 짓는 일이 처음이라 주위 사람에게 물어물어 일주일 정도 씨름을 하며 두어 평 남짓한 닭장을 완성했다. 기둥과 골격은 모두 지름 50밀리 정도의 철 파이프를 사용하였고, 모양도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지었다. 한 면은 콘크리트 옹벽을 의지하고 3면은 촘촘한 철망으로 둘러쳤다. 그리고 천정은 철망 위에 아크릴판을 덮어 투명하게 하였고 바닥에는 톱밥을 깔아 폭신폭신하게 하였다. 보는 사람마다 닭장치고는 호텔이라며 칭찬을 하였다. 내가 봐도 호텔은 아니더라도 닭 모텔쯤은 돼 보였다.

닭장을 지어놓고 병아리가 시장에 나온다는 3월 초부터 5일마다 서는 재래시장에 몇 번을 나갔지만, 연초의 조류독감 여파 때문인지 시장에 병아리가 도통 나오질 않더니, 4월 첫 장날에 어느 지인으로부터 병아리가 나왔다며 전화 연락이 왔다. 승용차를 타고 불이 나게 갔더니 두어 달 키운 병아리라며 제법 큰 병아리를 팔고 있었다. 한 마리에 6천씩, 암놈 10마리와 수놈 1마리 모두 11마리를 샀다. 나는 닭 장사에게 수놈 한 놈으로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닭 수놈은 정력이 좋아 암놈 서른 놈은 거뜬히 거느린다.”고 했어 모두 웃었다.

생전 처음 내 손으로 기르는 닭이라 시간만 나면 닭장으로 나가 먹이와 물을 주며 정성을 들였다. 내가 닭장엘 자주 가니까 평소에는 본 둥 만 둥 하던 강아지가 시샘을 하는지 내가 있는 닭장 쪽을 바라보며 시끄럽게 짖어 댔다. 짐승도 자기를 등한시하고 다른 놈을 좋아하면 시샘을 하는 모양이다. 닭을 기르면서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개밥과 닭 모이를 주어야 하고 때로는 닭장 안 청소도 해 줘야 했고, 또 앞뒤 텃밭에서 제철을 많나 밤낮없이 자라는 잡초도 수시로 매야 하니 지루할 시간이 없다.

병아리는 좋은 환경에서 잘 먹어 그런지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다. 병아리로 입양한 지 겨우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닭으로 이름을 바꾸어도 충분하다. 털도 기름기가 번지러 한 게 큰 닭이 다 되었다. 암탉보다는 수탉이 더 잘 큰다. 덩치도 크고 머리 위와 목덜미에 검붉은 벼슬이 남자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데 닭을 유심히 보니 머리가 덩치에 비해 너무 작았다. ‘아~하 저래서 머리가 둔한 사람을 보고 닭대가리라고 빈정대는구나’ 싶었다. 머리가 작으니 지능도 단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5월 중순 어느 날 새벽이었다. 닭장 쪽에서 “꺼어 꺽 꺼어 꺽”하는 이상한 소리가 몇 차례 났다. 나는 족제비나 고양이가 닭을 물어 죽이는 줄 알고 귀를 기울이다가 바로 일어나 닭장으로 나갔다. 닭장은 아무 이상이 없었고 수놈이 오늘 새벽, 첫울음을 울려고 목을 틔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놈이 수탉 값을 하려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수시로 성년이 다 된 닭들이 연애질을 하는지, 아니면 난폭한 수놈이 성폭행(?)을 하는지 모르지만, 쫓고 쫓기며 끽끽대는 소리가 나고 조금 있으면 수탉의 호탕한 울음소리가 나곤 한다. 그 소리는 암탉 열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우월감과 행복감에서 웃는 큰 웃음소리 같았다. 이렇게 많은 암탉을 거느리며 목청 높여 위용을 자랑하는 수탉에게 금방 문제가 생겼다. 새벽마다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이웃들의 새벽잠을 깨우기 때문이다. 아직 직접 원성은 없지만 은근히 어떤 조처를 해 주기 바라는 눈치들이다.

예전 농촌처럼 시계도 없고 농사만 짓는 시절 같으면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부지런한 농부들을 깨우는 자명종이었고, 또 농촌의 낭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제 놈 때문에 이웃집에 계속 피해를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스크도 씌울 수도 없으니 아무래도 수일 내 삼계탕으로 변신을 시켜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집 수탉의 행복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나야 할 판이다.

지금 이 순간 방안에서 제 명을 달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줄도 모르고, 닭장의 수탉은 또 한 번 위용을 자랑하며 우렁차게 울어대고 있다.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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