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글속에는 저자의 심혼이 담겨져 있다
칼럼-글속에는 저자의 심혼이 담겨져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6.20 18:2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글속에는 저자의 심혼이 담겨져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의 목적은 선과 악이 통하고, 옮고 그름이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사명감에 있다. 괴로움과 즐거움도 둘이 아니므로 반드시 양면을 버려야한다.

글 쓴 사람도 남의 글을 읽는 독자다. 물이 얼면 얼음 되고,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

그래서 물과 얼음이 하나이며, 나는 누구의 스승이면서 제자이고, 형이면서 아우다.

잘나 보인 사람에게도 단점은 있고, 못나 보인 사람에게도 장점은 있으니 구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글속에는 글 쓴 사람의 심혼이 담겨져 있다. 심정필정(心正筆正)이라, 마음이 바른 사람은 필법(筆法)도 바르다. 누구나 글을 쓸 때는 바른 글을 써서 읽는 사람의 마음이 높고,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유나 사상은 문자를 통하여 기록되고 계승 발전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각자들이 쓴 기록에 의하여 변화를 거듭해왔다.

글을 쓰는 것은 메모와 모방에서 시작된다. 모방은 표절과는 다른 개념이다. 셰익스피어는 “연기는 모방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하는가에 있다”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 한다”하였다. 로댕은 “예술가는 다만 자연을 모방할 뿐이다”하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모든 상황 속의 다양한 사례들을 발굴하는 메모습관이 필수이다.

오랜 세월동안 자신이 메모한 내용들을 갈고, 비틀고, 걸러내어 녹이고, 짜서, 흥미를 더하며, 그것을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을 구축해 낸 후 실감나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문장으로 탄생 시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은 어떤 글일까?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일 것이다. 두 번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독자들의 수준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그래서 글을 안 쓰면 본전이지만, 잘못 쓰면 시비와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글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역사도 글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며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경우, 미운 사람의 글을 쓸 때는 잘못된 부분만 확대시켜 오물까지 발라 독자들로 하여금 분통터지도록 써놓기도 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미운 사람을 향해 증오의 여론이 폭발토록 교묘한 솜씨를 발휘해 써 놓은 글도 있고, 자신이 지지한 사람에 대한 글에서는 무조건 칭찬만하며 아첨하기도 한다.

이런 글은 사회악 중 가장 큰 죄악이다. 글은 저자와 독자 간의 무언의 대화이기에 편향적으로 써놓은 글은 지적인 독약이 되어 읽는 사람의 정신을 독살하게 된다.

여론을 호도하는 글은 글 쓴 본인은 물론 독자까지 망치게 하는 죄이기에 쓰지 말아야한다.

필자는 내가 쓴 글로 인하여 손해 보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생사란 어제까지는 남의 일이던 것이 오늘은 나의 일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쓴 글은 도덕적, 법적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에 인용어 활용 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본질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적용하면 큰 코 다치게 된다. 청문회 때 논문표절의 경우가 그런 것이다.

글 쓴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은 자신의 민낯보다 훨씬 아름답게 쓰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마음의 때를 씻고, 비우며, 주변을 향하여 더욱 낮은 자세를 취해야한다. 글을 쓸 때는 개인감정을 삽입하지 말고, 독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자극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시원하고 신선한 매력과 감칠맛 나는 글을 써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쉬운 표현과 쉬운 말을 골라 쓰자. 이 글로인하여 속상해 하거나 손해 본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글을 내놓을 때마다 수준 높은 독자님들 앞에 조심스러울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