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어떤 분실물
아침을열며-어떤 분실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7.03 18: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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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어떤 분실물


일본의 현대시 한편을 소개한다.

かなしみ--谷川俊太郎(슬픔--타니카와 슌타로)

あの青い空の波の音が聞こえるあたりに(저 푸른 하늘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언저리에)
何かとんでもないおとし物を(무언가 엄청난 것을)
僕はしてきてしまつたらしい(나는 잃어버리고 온 것 같다)

透明な過去の駅で(투명한 과거의 역에서)
遺失物係の前に立つたら(분실물 보관소 창구에 서니)
僕は余計に悲しくなつてしまつた(나는 더더욱 슬퍼지고 말았다)

젊은 시절 나는 이 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30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오랜만에 빛바랜 옛날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문득 이 시가 다시 떠올랐다. 그렇다. 내게도 그리고 누구에게도 ‘저 푸른 하늘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언저리’가 있다. 그것은 ‘투명한 과거의 역’이라고도 표현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순수의 세계다. 지금 피 튀기는 권력다툼을 하는 누군가에게도, 주가의 등락을 보며 눈에 핏발을 세우는 누군가에게도, 그 가슴 깊숙한 곳 어느 한켠에는 이런 순수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이 시인이 말하듯 그것은 이미 ‘과거’다. 그 어딘가에 우리는 ‘무언가 엄청난 것’을 잃어버리고 지금, 이 현재로 달려온 것이다. 정신없이 바쁘고 고단했던 그 삶의 과정에서, 그 역사의 과정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이 시는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거기 두고 온 무언가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결론은 결국 ‘슬픔’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슬픔이 우리 인간에게는 그나마 작은 구원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의 주변을 한번 둘러보기 바란다. 개인차야 당연히 있겠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치열한 삶에서 획득한 전과물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들로 인해 과연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과거를 한번 돌아보기 바란다. 지금은 없어진 그러나 예전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무언가가 있다. 시인 타니카와에게는 그것이 전쟁 이전의 평화였을 수도 있다. 일본은 그것을 분실했었다. 혹은 단순한 ‘젊음’일 수도 있다. 혹은 ‘낭만’ 혹은 ‘열정’ 혹은 ‘꿈’ 혹은 ‘도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회한이 그런 돌아봄에는 필연적으로 동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슬픔’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제 와 그 ‘분실물’을 ‘과거의 역’에서 찾아본들, 돌아오는 것은 ‘슬픔’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냥 센티멘털한 한탄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삶의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 현재도 미래에서 보면 바로 그 ‘과거’다. 과거가 될 이 현재에도 아직 ‘저 푸른 하늘의 파도소리가 들리는 언저리’가 있다. 여기서라도 우리는 ‘무언가 엄청난 것’을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가족의 사랑, 화목, 건강도 아마 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것이 권력이나 돈보다 더 소중한 것도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또다시 잃어버리고 아쉬워한들 소용이 없다. ‘투명한 과거의 역’ ‘분실물 보관소 창구’에는 사실 그 분실물을 되돌려줄 직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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