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충신 박제상 순절 1600주년
진주성-충신 박제상 순절 1600주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7.05 18:33
  • 14면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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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시인-충신 박제상 순절 1600주년


충렬공 박제상(朴堤上)선생은 박혁거세 신라 초대왕의 9세손이고 파사왕의 5세손이다. 경주에 유학할 때 각간녀 김교부인(金校夫人)과 혼인하고 내물왕 30년에는 어부대부 벼슬에 제수됐다.

삽량부 군주인 간직을 사직하고 배중량과 힘을 합해 실성왕을 퇴위시키고 눌지왕이 집권케 했다.

고구려에 인질로 가있는 왕의 아우를 구하기 위해 장수왕을 찾아가 왕제(王弟)복호를 돌려 보내 줄 것을 간청하니 장수왕이 승낙해 함께 환국하는 큰 공을 세웠다.

또 일본에 인질로 가있는 왕의 아우를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건너 갈 것을 결심하고 내이사서(乃以死誓)하고 집에 있는 처자도 만나지 않고 울산에서 배를 타고 왜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김교부인이 떠나는 배를 보고 대성통곡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박제상(362~418년)선생은 죽음을 각오하고 적국에 들어가면서 다시 만날 것을 어찌 기약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왜국에 들어가 신라의 반역자로 가장하고 망명을 신청하니 처음에는 의심하지 않았다. 박제상은 미사흔(未斯欣)과 함께 항상 고기를 잡아 왜왕에게 바치며 신뢰를 쌓았다.

왜왕이 신라를 침공하기 위해 이들을 선봉장으로 삼게 되자 탈출할 기회로 보고 미사흔을 먼저 탈출시키고 바로 이어 박제상 선생도 탈출하려다 발각.피체되고 말았다.

왜왕은 왜의 신하가 되면 용서하겠다고 회유했으나 거절하고 각종 협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순절하니 왜도 양심이 있었는지 만고충신 계림국 박제상묘라는 비를 세웠다.

신라 눌지왕은 대아손(大阿飡)벼슬을 추증하고 김교부인이 딸 2명과 함께 순절하니 국태부인이란 벼슬을 추증했다.

고려조에 들어와 충렬(忠烈)시호를 보내고 태조 왕건이 유차달을 시켜 추모했으며 조선의 세종과 숙종은 어제시를 내리고 <삼강행실도>를 지어 첫째로 기록했다.

둘째 딸 아영은 아우 백결 박문량을 양육하다가 미사흔과 혼인하고 그의 딸 조생부인은 자비왕의 왕비가 되었다.

선생의 출생지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일대가 경남도 기념물 9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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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고개 2017-07-08 07:21:13
오랜만에 박제상 선조를 빛내시는군요 감사

추풍령고개 2017-07-08 07:21:09
오랜만에 박제상 선조를 빛내시는군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