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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
[경남 여성농업인을 찾아서]생활개선고성군연합회 김희자씨내 이름은 고성 유진농장 돼지엄마
배병일기자  |  3347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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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9  18: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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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회화면에서 유진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희자씨
“땅은 땀 흘린 노고 배반하지 않는다”
1985년 젖소 2마리 낙농의 꿈 키워
 
IMF 구제금융에 물거품 위기 극복
15여년만 딸아들 이름 따 유진농장

생활개선회 활동으로 삶 활력 찾아  
2010년 생활개선고성군연합회 대상

◆직장인에서 농업인으로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 당항포만,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바닷물, 철따라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는 곳. 이곳은 고성군 생활개선회에서 감사를 맡고 있는 김희자씨의 30여년의 눈물과 행복을 함께 해 온 유진농장이다.

김씨는 김해에서 태어나서 학창기를 보내고 마산에서 직장을 다녔다. 지금은 아주 젊은 나이지만 그 시절엔 나이가 좀 된다고 했던 시절, 직장 동료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젖소 송아지 2마리로 낙농의 꿈을 꾸며 1985년 1월 고성군 회화면 어신이라는 조그마한 농촌마을에서 신혼이자 농촌생활은 시작됐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 성실함으로 극복
김씨의  남편은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물론 열심히 살아오면서 힘든 농촌생활을 잘 극복하도록 해 주는 힘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층층시하 시집살이, 시할머님, 시어머님, 동생 넷의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였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는 항상 그 자리였고 앞으로 살아갈 앞날은 캄캄했다.

   
▲ 김희자씨가 축사 소독을 하고 있다.
기대에 부풀었던 낙농의 꿈도 사라지고 그나마 시작했던 한우사육도 가격 폭락으로 무너졌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새로운 출발을 각오하며 같은 마을이나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1988년, 지금 현재의 자리로 분가했다. 그리고 시작한 여우사육. 그러나 돈이 될 거라는 지인의 말만 듣고 시작하다보니 아무 경험도 지식도 없었는데 잘 될 리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나라 겨울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했고 수입모피로 인해 여우하고도 이별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농업 경영인이라 유일하게 배달되어 오는 농민신문에 농지 구입자금을 보고 신청, 지원을 받아 1992년 3월 지금의 농장이 탄생하게 됐다. 처음엔 변변찮은 축사도 없이 어미 돼지 10두를 외상으로 구입해 키웠으나 자금이 없으니 웬만한 일들은 직접 하게 되었고 축사도 한동 한동 직접 지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하늘도 인정했는지 돼지도 100두 1000두 불어났고 더불어 나의 분신인 우리 아이들도 넷이나 태어났다.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경제적으로도 나아지니 농촌생활은 재미 그 자체였고 밤낮으로 일을 해도 힘든 줄을 몰랐다.

   
▲ 축사에서 사료를 주고 있는 모습
   
▲ 새끼 돼지 예방주사를 직접 놓고 있다.
◆생활개선회 활동 마음의 상처 치유 
1990년도에 처음 가입한 생활개선보급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생활개선보급회는 배우면서 내가 배운 과제들을 주변에게 보급하는 다른 단체와는 활동이 좀 특별한 단체였다. 지도사 선생님들은 형제들처럼 가족같은 분위기로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끌어 주었다. 항상 잘 되는 것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으로 바뀌게 됐다.

IMF가 터지면서 부도처리 되는 축산 농가들이 속출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칠 것 같았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를 악물어야 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한 5~6년 정도 고생하고 나니 다시 안정이 찾아왔다. 그리고 돼지농장을 한지 15여년 만에 딸과 아들의 이름 한자씩 따 유진농장 우리의 농장이다.

그 후로도 구제역으로 양돈업이 어려움에 처해지고 또 가격폭락으로 부도위기도 겪었으며 무리한 시설 투자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 지킴이 모니터로 집에서도 축사를 관리하고 있다.
생활개선회 활동으로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치매노인 목욕봉사, 어려운 이웃 김장 봉사, 다문화 가족 멘토링 등 다양한 봉사활동은 내 자신을 치료해 주는 의사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즉 봉사활동을 통해 힘들고 지친 내 몸과 마음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 주었다. 사실 제 어려움의 도피처로 생활개선회 활동했는데, 오히려 주위에선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으로 인정해 2008년부터 지금까지 생활개선고성군연합회 임원을 맡기고 2010년도엔 생활개선고성군연합회 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금은 2000여 두와 연 매출액 10억이 넘는 농장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해썹(HACCP) 인증과 김희자란 이름 외에도 돼지엄마란 애칭도 붙었다.

가끔씩 생각 해 보면 어렵다고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갔었다면, 생활개선회라는 단체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옛날에 비해 농촌도 많이 좋아지고 귀농귀촌도 늘고 있지만 그래도 많이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땅은 땀 흘린 노고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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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 - 심혜순 (고성군농업기술센터 생활문화담당)
힘든 농업 활동과 더불어 봉사에도 앞장

현재 생활개선고성군연합회 감사를 맡고 있는 김희자씨는 1990년 생활개선회에 가입하여 회화면 생활개선회장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면 2010년 생활개선고성군연합회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생활개선 과제 보급 및 실천,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집에서는 여린 여성의 몸으로 본인이 직접 예방주사, 발톱 관리, 축사 소독 등 1500여두가 넘는 돼지들을 관리하고 있는 억척 여성농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배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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