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어색한 짧은 머리
세상사는 이야기-어색한 짧은 머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7.26 18:35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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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어색한 짧은 머리


지난 일요일 늦은 밤, 서울 출장길에 나섰다.

심야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막내 딸아이가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 한통을 보냈다.

처음에는 아무생각 없이 쳐다봤다봤는데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자세히 보니 누워 있는 아들 녀석의 머리다.

그 많던 머리카락이 다 사라져버려 남의 자식인줄 알았다.

며칠 전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2박 3일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용돈을 요구 했던 기억이 났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장한 각오로 이발을 하고 온 모양이다.

‘오빠가 방금 집에 왔는데 머리가 너무 짧아 이상했다’는 부연 설명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전화 액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사무실 책상 안에 있는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합천읍에 있는 이발관에 모시고 가 머리 깎는 모습을 촬영해둔 사진이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들은 다음 주 월요일에 논산 훈련소로 입대할 예정이다.

필자는 경기도 연천에 있는 최전방 서부전선을 지키는 육군 비룡부대에서 근무했다.

제대 한지가 20년이 넘었다.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아서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부대장님이 찾는다는 말에 아무 이유도 없이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전화 해봐라”며 수화기를 건네 주셨다.

순간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게 아닌지 더 걱정이 됐다.

“욕 보제, 우리는 잘 있으니 걱정 말고 건강하게 잘 있다 오이라, 끊어라” 이게 전부였다.

내무반으로 내려와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며 살고 계시던 분이 어디서 이런 용기나 났을까.

더군다나 아들에게 사랑한다거나 보듬어 준 기억이 하나도 없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사랑이란 꼭 말로 안 해도 알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 계기였다.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응원에 힘입어 건강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모범 병사로 부대장 표창도 받았다.

‘자식 걱정’이 수화기를 들게 한 힘이었다는 걸 이제 서야 알겠다.

필자는 군 생활에서 ‘인내심’, ‘책임감’, ‘도전 정신’, ‘감사’를 배웠다.

군대에서의 추억과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

고향 친구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서 직업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필자의 경험담을 설명해주면서 병사들에게 많은 배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

자식 걱정이 담긴 부모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게다.

아들이 입영 통지서를 들고 왔을 때만 해도 ‘군대 가는구나’ 라고만 여겼다.

지난 7월 중순경에 아들의 친구가 해병대에 입대를 했을 때도 그런 줄만 알았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은 커져만 간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군인들만 봐도 내 아들 같아 보였다.

더운 날씨에 ‘훈련은 잘 견뎌 낼 수 있을까’, ‘총은 제대로 쏠 수 있겠나’ 여러 가지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덩치만 컸지 아직도 철부지 어린애라는 생각에 더 안쓰럽기만 하다.

달리는 버스 차창에는 철책 선에 걸린 달을 보며 고향 생각을 하던 내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의 환한 얼굴이 옆에 떠오른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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