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옛 사람의 주도(酒道)
칼럼-옛 사람의 주도(酒道)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8.07 18:1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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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옛 사람의 주도(酒道)


엄격한 자리에서의 술은 천천히 유장하게 마시라. 속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점잖게 로맨틱하게 마시라. 병자(病者)는 술을 아주 적게 마셔야 하고, 슬픔의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시라. 봄 술은 정원에서 마시고, 여름 술은 들에서 마시라. 가을 술은 조각배 위에서 마시면 좋고, 밤에 마시는 술은 달빛 아래가 좋다. 취하는 데는 때와 장소가 있다. 꽃의 색향과 조화를 이루려면 햇볕 아래서 꽃을 대하며 취해야 하고, 상념을 씻으려면 눈 내리는 밤에 취하여야 한다. 성공을 기뻐하며 취하는 자는 노래를 한 곡 불러야 하고, 송별연에 임하여 취하는 자는 이별의 정에 곁들여 한 곡의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선비가 취하면 수치(羞恥)를 면하기 위해 행동을 삼가야 하며, 군인이 취하면 위용을 높이기 위해 크게 술을 분부하여 위엄을 더해야 한다. 누각 위에서의 잔치는 여름이 좋으며, 강물 위에서의 잔치는 가을이 좋다. 이것이 곧 기분과 경치에 알맞은 음주의 올바른 방법인데, 이 법칙을 어기면 음주의 낙은 상실될 따름이다.-중국의 어느 작가가 한 말이다. 기뻐서 마실 때에는 절제가 있어야 하고, 피로해서 마실 때에는 조용해야 하고, 점잖은 자리에서 마실 때에는 소쇄한 풍도가 있어야 하고, 난잡한 자리에서 마실 때에는 규약이 있어야 하고, 새로 만난 사람과 마실 때에는 진솔해야 하고,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꽁무니를 빼야 한다. 대저 술에 취하는 데는 각기 적절함이 있다. 즉 꽃에서 취할 때에는 대낮을 이용하여 해의 광명을 받아야 하고, 눈〔雪〕에서 취할 때에는 밤을 이용하여 눈의 청결을 만끽해야 하고, 이별에 의해 마실 때에는 바리때를 두들겨서 그 신기를 장쾌하게 해야 하고, 문인과 취할 때에는 절조와 문장을 신중하게 하여 그의 수모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준인(俊人)과 취할 때에는 술잔의 기치(旗幟)를 더하여 그 열협(烈俠)을 도와야 하고, 누각에서 취할 때에는 여름철을 이용하여 그 시원함을 의뢰해야 하고, 물에서 취할 때에는 가을철을 이용하여 그 상쾌함을 돋워야 한다. 달에서 취할 때는 누각이 적절하고, 여름철에 취할 때에는 배〔舟〕가 적절하고, 산에서 취할 때에는 그윽한 곳이 적절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취할 때에는 얼근하게 마시는 것이 적절하고, 문인과 취할 때에는 기발한 말솜씨에 까다로운 주법이 없어야 하고, 호객과 취할 적에는 술잔을 휘두르면서 호탕한 노래를 불러야 한다.

마시는 데는 5가지의 합(合:마시기 좋은 경우)과 10가지의 괴(乖:마심을 삼가야할 경우)가 있다. 5가지의 합은 시원한 달이 뜨고 좋은 바람이 불고 유쾌한 비가오고 시기에 맞는 눈이 내리는 때가 첫째의 합이요, 꽃이 피고 술이 익는 때가 둘째의 합이요, 우연한 계제에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이 셋째의 합이요, 조금 마시고도 미친 흥이 도도한 것이 넷째의 합이요, 처음에는 울적하다가 다음에는 화창하여 담론이 금시에 민첩해지는 것이 다섯째의 합이다. 10가지의 괴는 날씨가 찌는 듯하고 바람이 조열한 때가 첫째의 괴요, 정신이 삭막한 때가 둘째의 괴요, 특별한 자리에서 주량이 걸맞지 않은 것이 셋째의 괴요, 주객이 서로 견제하는 것이 넷째의 괴요, 초초(草草: 분주한 모양)히 수응하여 마치 시간 여유가 없는 듯한 것이 다섯째의 괴요, 억지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여섯째의 괴요, 신을 신은 채 자리를 옮겨가면서 귀엣말을 주고받는 것이 일곱째의 괴요, 약속에 의해 야외에 나갔을 때 날씨가 몹시 흐리거나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여덟째의 괴요, 길이 먼데도 날이 어두워서야 돌아가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홉째의 괴요, 손이 훌륭하면서도 다른 약속이 있거나 기생이 즐거워하면서도 다른 급한 일이 있거나 술이 친하면서도 변하였거나 적(炙:산적)이 아름다우면서도 식은 것이 열째의 괴이다. 술 마실 때의 요리를 음저(飮儲:안주)라 하는데, 첫째는 선합(鮮蛤: 날참조개의 고기)과 주해(酒蟹: 게로 요리한 것)이고, 둘째는 웅백(熊白:곰 등 부분의 기름으로 맛이 매우 좋다)과 서시유(西施乳: 복어의 다른 이름으로 봄철에 맛이 아주 좋음)이고, 셋째는 염소의 양이나 거위고기 구이이고, 넷째는 송자(松子)와 행인(杏仁)이고, 다섯째는 날죽순과 부추이다.-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 중 〈상정(觴政)〉에 나오는 내용이다. 조조는 〈단가행〉에서 이렇게 읊었다. 술을 대하면 응당 노래하세. 인생이 그 얼마나 되리오. 아침 이슬과도 같은 것, 지난날은 우환도 많았어라. 격앙된 마음에 걱정은 잊기 어렵나니, 무엇으로서 근심을 잊을고, 오직 술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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