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독립선언 93년 맞아
2.8독립선언 93년 맞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07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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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진/진주보훈청 선양담당자
2월 8일은 1919년 일본 땅 동경에서 유학중이던 600여 명의 학생들이 빼앗긴 국권을 찾고자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한지 93주년이 되는 날이다.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피탈당한 뒤 일본 동경에서 수학하던 재일 유학생들은 조선유학생학우회 등 여러 단체를 결성하여 애국사상 고취활동을 펼쳤으나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일제 한국강점의 부당성을 각국의 대사관과 공사관 등에 알려 독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에 1919년 1월, 그들은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의하고 최팔용, 김도연 등 10명의 실행위원을 선출했다.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구성하고 3.1운동 선언서의 기본이 된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이광수가 기초한 2.8 독립선언서는 미국과 영국이 일제의 조선침략을 승인한 것을 비판하고 10년간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구실로 한반도에 들어왔지만 지금 현재 한반도를 점령할 아무 근거가 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일제가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를 계속한다면 일제에 대해 우리 민족은 영원히 투쟁할 것이며 독립 후에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선진국의 모범을 따라서 신 국가를 건설하고 반드시 세계평화에 공헌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특히 선언서 마지막에 제시된 4개항의 결의문에는 한일합병조약의 폐기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민족대회의 소집을 요구하며, 만국평화회의에 민족대표를 파견할 것이며, 이 목적이 이루어질 때 까지 영원한 혈전을 벌일 것을 선언하는 등 3.1 독립선언서보다 훨씬 더 강경하게 독립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렇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학생들은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 및 일본정부, 일본의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열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으나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10여명의 실행위원을 포함한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되었다. 이 사건 이후 울분을 참고 있던 이 땅의 청년 학생들은 3.1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그 이후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항거가 조직적으로 펼쳐지게 됐다. 사랑하는 조국이 나라 잃은 설움으로 도탄과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젊은 학생들의 의기가, 바로 이 나라 독립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리는 상실된 민족의 국권을 쟁취하기 위해서 학업을 중단하고 독립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동경 유학생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현재의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민족에게는 무궁한 잠재력이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다는 명목하나로 실행한 2.8독립선언, 그날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아로새겨야 할 것이며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이어받아 선진조국 건설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소중함에 대하여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93주년 2.8독립선언을 맞이하여 그날의 의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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