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회계산 자락 산음 땅에서 산청의 역사와 교육을 생각하다(1)
중국 회계산 자락 산음 땅에서 산청의 역사와 교육을 생각하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8.17 09:25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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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이 산청교육지원청 장학사

▲ 장열이 산청교육지원청 장학사
경남 산청의 지명은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산음의 빼어난 경치에 비유해 이름을 지은 것이다. 1912년 공립 산청 보통학교 개교 당시 학교 건물로 사용된 환아정(換鵝亭)은 중국 소흥의 난정(蘭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소흥 옆에 있는 제기시는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알려진 서시의 고향이다. 산청교육청 장열이 장학사가 지난 8월 3일부터 10일까지 중국 절강성 소흥 일대 역사문화 탐방을 하고 서시(西施)의 고향과 난정에 대한 기행문을 본지에 기고해 2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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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녀 서시의 고향, 비단 같은 ‘완사천’ 유유히 흐르고
‘와신상담’ 의 주역들 자취 월나라 왕궁 터에 면면히 이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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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4대 미인 중 한사람인 서시의 형상이다. 형상 위에 ‘하화신녀(荷花神女)’라는 글이 있는데, 연꽃 같은 신비로운 여인이라는 의미이다.
산청(山淸)은 이름 그대로 산수(山水)가 맑은 고장으로 남명 선생 등 선비들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고장이다. 평소 산청이란 지명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리산 자락에 위치해 경치가 좋고 깨끗해서 붙여진 이름이겠지 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산청 교육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1912년 산청 보통학교 개교 당시 학교 건물의 이름이 환아정(換鵝亭)이라는 것을 알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와 연관이 있었다. 즉 왕희지가 중국 산음 땅에 사는 어느 도사의 청으로 『도덕경(道德經)』을 써 주고 거위를 받은 '환아'의 고사를 취해 중국 산음(山陰)과 이곳 산청의 옛 이름이 같아 ‘환아정’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에 산음 땅이 있고, 산청이란 지명이 중국 산음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 산음 땅은 현재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이다.

여름 방학을 맞아 소흥을 답사하기로 했다. 산청 교육청에서 약 5년 동안 근무한 나에게는 중국 절강성 소흥 산음 땅은 낯설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중국 소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소흥은 절강성에 속하는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역대로 많은 유명인을 배출한 곳으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중국 고대 순임금 때 황하의 홍수를 다스려 하나라를 건국한 우 임금으로부터, 이후 동진시대 서예의 성인 왕희지, 당대의 대문호 하지장을 비롯해 모택동과 함께 현대 중국의 토대를 마련한 중국의 어머니 주은래, 그리고 잠든 현대 중국인의 정신을 일깨운 대문호 노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수업 시간에 언급했던 많은 중국인들이 소흥 출신이었다.

상해에서 2시간 30분 정도 달려 소흥에 도착했다. 소흥 시내로 들어가기에 앞서 톨 게이트에서 먼저 제기시(諸曁市)로 향했다. 제기시는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 최고의 미녀이자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녀의 한 사람인 서시(西施)의 고향이다. 시내 입구에 들어서니 ‘서시의 고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서시의 고향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 했다.

▲ 월왕 범려 문종 상 : 와신상담 전각 안에 있는 월나라 주역들의 모습.
현재 서시가 살았던 집 주위는 월나라 전통 거리로 만들어 관광 명소로 조성되어 있다. 서시 고택 앞으로 흐르는 강이 바로 완사천(浣紗川)이다. ‘비단을 씻는 강’이란 의미의 완사천에는 빨래하는 월나라 여인들의 모습을 만들어 놓았다.

서시는 춘추 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었다. 물속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 앉았다. 그래서 서시침어(西施浸魚)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였다. 서시는 말 그대로 경국지색이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완사천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 부인이 인연을 맺은 장소를 나주 ‘완사천(浣紗泉)’이라고 부르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나주에 10년간 머무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위쪽 산 아래에 다섯 가지 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있어 가보니 샘에서 아리따운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왕건이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여인이 버들 잎을 띄워 주었다. 왕건은 여인의 총명함과 미모에 끌려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분이 장화왕후 오씨 부인이다. 완사천 미인이 서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장화왕후 오씨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 완사천 : 서시가 빨래를 했다는 완사천. 이곳에서 서시를 본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완사천 가에는 서시가 빨래를 했던 곳에 ‘西施浣紗處(서시완사처)’란 글씨를 바위에 새겨 놓았다. 서시가 비단을 씻었던 곳인 ‘완사처’ 조금 위에 ‘서시고리(西施古里)’ 즉 서시가 살았던 마을이 있다. 입구에 ‘완사의 물이 서시의 빼어남을 길렀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서시전(西施展)에 들어서니 절대가인(絶代佳人)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중앙에 서시 상(像)이 있었다. 현대 중국인들이 나름대로 2500년 전의 중국 미인을 상상해 만들어 놓은 상으로 그런대로 서시의 모습을 상상할 만 했다. 이틀 전 상해 박물관에서 본 당나라 미인상이 통통한 모습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날씬한 현대적 미인상이었다. 당나라 미인인 양귀비와 서시의 미모를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서시가 훨씬 미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서시전 위에 전각이 하나 있는데,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현판 아래에 월왕 구천과 문종, 범려의 목상을 안치해 놓고 있었다. 서시가 와신상담 고사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흥에 월나라 왕궁인 용산(龍山)이 있는데, 현재는 부산공원(府山公園)으로 바뀌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로 되었지만 월왕 구천을 중심으로 한 월나라 신하들의 활약상과 와신상담의 고사를 그림으로 벽에 새겨 두었다. 월나라와 자웅을 겨루었던 오나라 유적은 소주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소흥과 소주가 중국의 대표적 수향(水鄕), 즉 물의 도시로 지리적 여건상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중국 4대 미인 중 한 사람인 서시의 고향이 소흥 근처 제기시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 직접 답사해 눈으로 확인해 보고 감회가 남달랐다. 제기에서 소흥까지는 40분이 걸렸다. 소흥은 우리나라 경주와 성격이 비슷한 역사도시였다. 현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아Q정전’ 의 작가 루쉰과 주은래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소흥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특히 루쉰의 옛집에는 항상 인산인해라고 한다. 소흥에 오는 중국인들이 루쉰의 옛 집을 가장 먼저 찾는 반면 나는 왕희지의 유적인 난정(蘭亭)을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난정에는 지금도 거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난정을 찾았다.<계속>
▲ 서시전 위에 한 전각에 월왕 구천, 범려, 문종의 상을 만들어 놓고 와신상담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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