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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회계산 자락 산음 땅에서 산청의 역사와 교육을 생각하다(2)장열이 산청교육지원청 장학사
장금성기자  |  kjg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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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1  18: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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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근대 교육의 발상지 환아정 유래 중국 ‘난정’에서 발견하다.
왕희지 난정서의 현장, 유상곡수 보며 옛 선비들 풍류를 느끼다.

 

 

   
▲ 장열이 산청교육지원청 장학사

난정(蘭亭)은 정자 이름으로 소흥 외곽에 있었는데 현재는 ‘난정경구(蘭亭景區)’라고 지정해 일대를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옛날 난정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王羲之)가 353년에 지역 인사 41명과 함께 유상곡수(流觴曲水)에서 술잔이 한 바퀴 돌 때까지 시를 읊조리며 술을 마시던 곳이다. 유상곡수란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 보내면 그 술잔을 받은 사람이 시를 지어 화답하는 놀이이다. 우리들이 수업 시간에 배웠던 경주의 포석정이 이곳에서 본받지 않았나 싶었다.

난정에 들어서니 ‘鵝池(아지)’라는 큰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었다. ‘거위 못’이라는 뜻의 아지 비석인데, 옆에는 못이 있었으며 거위도 있었다. 못의 거위들은 왕희지 고사(古事)를 아는지 모르는 지 못가에서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었다.

거위를 보는 순간 현재 산청 초등학교 전신인 산청보통학교 개교 장소인 ‘환아정’이 떠올랐다. 환아정은 옛날 산청의 객사였다고 한다. 1395년 경 당시 산청 현감인 심린(沈潾)이 산음현 객사의 후원으로 정자를 하나 창건하고 학문이 뛰어난 권반(權攀)이 정자 이름을 ‘환아정(鵝換亭)’이라고 지었으니, 바로 이곳에서 유래한 것이다.

 

   
▲ 난정 입구에 있는 아지 전경. 아지(鵝池)는 거위 못이라는 뜻인데, 왕희지가 거위를 좋아해 산청의 선비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객사 건물을 환아정이라고 지었다.

당시 환아정 편액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로 알려진 한석봉의 글씨를 달았는데, 정유재란 때 왜놈들에 의해 소실되고 말았다. 창건된 지 200년 만에 소실된 환아정은 권순(權淳)이 다시 복원한 후 기문을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게 부탁해 달았다.

우암은 환아정 기문에 “정자는 고을의 이름을 따라서 이름 지었고 그 나머지는 정자로 인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나는 아직 중국 회계의 산음은 가보지 못했는데, 그 산수의 빼어남이 어디가 나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름을 가지고 사실을 구한다면 아마 서로 백중세를 이룰 것 같다”라고 했다.

우암은 이 글에서 중국 회계의 산음을 가보지 못해 그 산수의 빼어남이 어디가 나을지 모르겠지만, 이름만을 보면 서로 백중세라고 했는데, 나는 직접 중국 산음 땅에 와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소흥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바로 회계산(會稽山)으로 지리산에 비하면 언덕에 불과했다. 해발 350m라고 하는데 우리 산청의 지리산과 비교할만한 산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경남 산청이 중국 산청보다 경치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우암이 직접 소흥에 와서 회계산을 보고 지리산을 보았다면 백중세라는 글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왕희지의 고사가 깃든 정자이므로 그 운치는 경치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왕희지는 351년 회계내사(會稽內史)로 이곳에 부임을 했다. 회계내사로 있을 때 한 도사가 그의 글씨를 흠모하여 많은 예물을 보내 ‘황정경(黃庭經)’을 써주길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 왕희지 동상. 난정 입구에 있는 중국 서예의 성인 왕희지 동상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 후 이 도사는 왕희지가 흰 거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손수 이 거위를 그에게 보냈다. 왕희지가 흰 거위를 보고 매우 즐거워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사는 즉시 글씨를 쓸 좋은 비단을 준비했다. 이번엔 왕희지도 거절치 않고 즉석에서 ‘황정경’을 써 주었다. ‘흰 거위와 글씨를 바꾸다’(白鵝換字)의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아지에서 거위를 보고 왕희지와 지역 인사들이 모여 유상곡수 놀이를 한 곳을 찾았다. 조금 가니 바위에 ‘곡수유상(曲水流觴)’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왕희지가 지금으로부터 1700년전 이곳에서 잔을 띄우고 시를 읊조렸던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경주 포석정의 형태와 유사했다. 왕희지는 이곳에서 유상곡수 놀이를 하고 난정집 서문(蘭亭集序文)을 지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난정서’이다. 난정서는 아마 서예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써 보았을 것이다.

명필 왕희지의 대표적인 글씨로 당 태종이 가장 아끼고 존경했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 태종은 왕희지의 글씨 중에서도 특히 난정서를 좋아해 이를 자신이 죽을 때 함께 묻도록 했다고도 전해진다. 이후 난정서 원본은 전해지지 않은 채 필사본만 500여 종에 달하는 까닭에 ‘난정서는 왕희지가 쓴 것이 아니다’라는 진위 논란도 꾸준히 제기돼 온다고 한다.

조선말인 1870년 산청 현감 이만시는 환아정을 중수하고 흥학당(興學堂)을 창건했다. 1908년 사립 학교인 계명학교가 흥학당에서 개교를 했다. 3년 후인 1911년 사립 계명학교가 흥학당에서 환아정으로 이전하였다. 얼마 후 계명학교는 문을 닫게 되고 1912년 산청 공립보통학교가 개교를 했다.

1912년 5월 28일 산청 공립보통학교가 산청의 상징 건물인 환아정에서 개교를 했다. 산청 공립보통학교 개교 당시 모습이 그림 엽서로 제작돼 지금껏 전해지고 있다. 이 그림엽서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산청교육의 산실인 환아정 모습을 볼 수 있다.

환아정 건물에는 학생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옆으로 환아정이란 현판이 보이는데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겹처마로 되어 있는 건물의 웅장한 자태가 무척 이채롭다. 이 장엄한 건물인 환아정은 1950년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환아정은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누각건물의 하나로서 현존한다면 건축사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중요 건축물로서 보다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 되어 왔다. 소실된 지 53년이 지난 2003년 뜻있는 산청의 유지들에 의해 ‘환아정 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중국 소흥 난정에서 우리 산청 교육의 요람이었던 환아정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현재 산청 초등학교에는 옛 환아정(換鵝亭)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옆에는 조선 시대 중기 문신이었던 덕계 오건 선생의 시 ‘경호주인(境湖主人)’을 새긴 비가 서 있다.

‘신선이 놀 때 요지만을 고집하랴
이곳 환아정 경치 그만 못하리
한 가락 피리 소리 봄날은 저무는 데
강물 가득한 밝은 달, 외로인 뜬 배에 실려있네’

라는 내용이다. 산청의 대표적 선비 덕계 선생은 산청 환아정 경치를 신선들의 연못인 요지(瑤池)에 비교했다. 지리산 자락 경호강가에 있었던 산청의 환아정은 신선들의 연못과 같다고 했는데, 소흥의 난정은 신선을 거론할 만큼 뛰어난 경치는 아니었다. 다만 왕희지의 유상곡수, 난정서로 말미암아 조선의 선비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우리 산청의 지명도 여기에서 나왔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 산청 환아정. 1950년대 소실된 산청 환아정으로 1912년 5월 28일 산청 공립보통학교가 이곳에서 개교를 했다.

마지막으로 일찍이 남명 선생께서 말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시대를 본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산청과 소흥, 황희지와 거위 그리고 산청 환아정 등 이번 답사는 산청에 근무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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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 거위들. 현재 아지에는 거위들이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다.

아지 표지석.

유상곡수 터. 왕희지가 소흥지역의 인사들과 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조렸던 유서깊은 곳이다.

유상곡수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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