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을열며-역사를 보는 눈
아참을열며-역사를 보는 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13 18: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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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역사를 보는 눈


나는 시인이고 철학자이지만 젊은 한때 역사를 전공할까 하는 지향도 갖고 있었다. 이른바 인문학의 3대 분야인 문사철 모두에 관심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역사공부는 그저 일반적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라는 E. H. 카의 말이나 “세계역사는 세계의 심판정이다”라는 헤겔의 말 같은 것은 지금도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철학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역사와 관련된 부분을 만나게 되면 특별한 매력을 느끼곤 했다. 이를테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이나, 헤겔의 역사철학, 그리고 딜타이의 이른바 역사이성비판이나, 하이데거의 역사성 분석…등등이 그랬다. 그런 공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중의 한 토막이다.

제법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헤겔의 역사철학에 보면 “민족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민족들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다.”라는 것이 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헤겔철학의 추상성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러셀 같은 이는 그를 아예 철학자로 다루지도 않지만, 역사에 관한 헤겔의 이런 말을 들어보면 그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통찰력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안타깝지만 우리 민족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역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 참으로 회의적이다. 우선 일본에 대한 경우가 그렇다. 삼국시대, 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왜구 침탈은 별도로 치고 엄청난 재난이었던 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것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요 수치요 대참사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토에 있는 ‘이총’(귀무덤)에 가서 보면 그건 더욱 확실해진다. 그런데 어떤가. 우리는 그 참사로부터 무엇을 배웠던가? 그 답은 그로부터 불과 몇 백년 후 우리가 겪은 그보다 더욱 더 비극적인 저 갑오왜란과 경술국치를 보면 자명해진다. 우리는 앞선 왜란의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를 않았던 것이다.

물론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성룡의 {징비록}도 그런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책의 존재조차도 잘 모른다. 그런데, 전해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왜란 이후 전개된 저 조선통신사의 역사에서 우리는 뜨끔한 한 장면을 목격한다. 통신사들이 에도로 가는 동안 그 연변의 책방에 바로 그 {징비록}이 산더미처럼 쌓여 팔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들 역시 저 태평양 전쟁의 패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덴노’의 반성조차도 일본 우익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가 아니던가.

최근, 중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옛 친구가 귀국을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너무너무 나라걱정을 하며 내뱉는 말이 가슴에 와 꽂혔다. “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몰라. 중국 전문가가 없어. 있어도 요직에서 역할을 못해. 이대로 가다간 100년 이내에 우리가 중국의 한 성으로 전락할 수도 있어. 중국의 야심과 역량을 허투루 보면 절대로 안 돼!”

그렇다.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중국과 일본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큰일 날 일이다. 미국에 살면서 나는 저들과 우리의 ‘격차’를 뼈아프게 느낀 적이 있다. 저들에게 무수히 당해왔던 저 역사로부터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이미 그 옛날 율곡과 도산이 우리에게 힘주어 강조하며 가르쳐준 것이었다. 잊지 말자. 우리의 생명과 강토는 우리가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 약한 자에게, 그리고 배우지 않는 자에게는 ‘내일’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티비 뉴스에 연일 미사일과 사드와 폭격기와 항공모함 같은 것이 비치고 있건만 시민들은 너무나 천하태평이다. 지난 민방위 훈련 때 경보를 무시하고 활보하던 시민들의 무덤덤한 혹은 짜증스런 표정이 묘하게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625 남북전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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