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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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9.18 18: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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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

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사약


스페인 자전거투어 이틀째 되는 날 힘든 고갯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중 나보다 덩치 큰 친구를 만났다. ​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날이 기울어 서로 자연스럽게 하루 묵을 저렴한 숙박 장소를 찾게 되었다.

현지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스페인 친구 이앙키는 저렴한 모텔을 소개해 주었고 그 날 이후 이앙키와 함께 예상에도 없는 자전거 순례길을 같이 하게 되었다.

스페인어라고는 인사하는 것과 고맙습니다.가 전부이고 영어 또한 간단한 의사소통만 되는 정도라 서로의 눈빛으로 대화하면서 5일간을 함께 달렸다.

​바로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가는 길은 하루에 사람을 한명도 만나지 못하거나 자동차 한 대 지나가는 것을 구경할 수 없고 두사람만의 가파른 호흡 소리와 자전거 바퀴에 자갈 튀는 소리만이 함께 하는 길이었다.

땀으로 범벅되어 하루 자전거 여행을 마치거나 아침 식사를 할 때 이앙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에스프레소 한 잔을 건 내는 것이었다.

때로는 잠시 쉬어 가는 작은마을의 구멍가게에 들리게 되면 물 한통 더 사서 챙겨주거나 시원한 스페인 맥주 한 캔씩 나눠 마시는 거였다.

땀과 함께 힘들고 지칠때 진하게 들이키는 에스프레소는 부모님 몰래 꿀항아리에서 한 스픈 몰래 퍼 먹는 듯한 감미롭고 달콤하여 그 어떤 고 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보다 힘이 났고 감미로운 초콜릿보다 달콤했었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내리는 주인장도 환갑을 넘긴 듯한 분도 계셨고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도 제 각양각색이고 커피머신도 대부분 1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기계지만 에스프레소 한 잔에서 만끽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은 자전거가 머무는 모든 마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전거 여행이 끝나고 난 뒤 이앙키와는 지금도 가끔씩 안부를 서로 확인한다.

자전거 취미로 지구 반대편 사람을 알게 되었고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마음을 소통 하며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에스프레소는 마시면 죽는 사약이 아니다.

에스프레소는 반대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마시면 살아나는 듯 한 힘을 주는 음료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사람과 소통하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음료다. 음료수 한 잔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카페에 눌러 앉아 있어면 진상으로 몰릴 수 있지만, 가을이라 한 책권 읽으며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면 용서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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