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00% 내 것은 없다
칼럼-100% 내 것은 없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0.09 18:2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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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100% 내 것은 없다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100% 내 것은 없다. 건강도 재물도 권력도 명예도 100% 내 것은 아니다. 서로 돕고 서로 거들고 서로 의지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과 들에 자라는 풀과 나무도 제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 그렇게 자란 것이 아니다. 흙과 물과 햇빛과 공기의 도움이 있었기에 그렇게 자란 것이다. 지구도 태양계의 인력에 의해 평행을 유지하며 제 궤도를 도는 것은 서로의 균형을 깨지 않는 궤도라는 도움이 있기에 모든 행성 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그렇게 절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내 것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커져 간다. 그로 인해 어떻게든 돈과 권력을 쥐려고 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 영토를 넓히려고 한다. 집착은 구속이다. 애착은 사슬이다. ‘나’와 ‘내 것’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자리하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제법무아(諸法無我), 곧 일체의 형상계(形象界)에서는 고정되게 내세울 존재가 없다고 하셨다. ‘나’라고 일컬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나’라는 생각, ‘나의 것’이라는 집착, 자만심과 애착, 소유욕을 비울 때, 우리들 존재의 그릇에는 새 것이 담길 수 있다. 비우지 않고 무엇을 채울 수 있겠는가? 텅 비워야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 불법의 가르침이다.

명예나 권력이나 지위 또한 그렇다. 일단 내 것이다. 싶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게 마련이다. 사랑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가 늘 곁에 있어 주고, 늘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비탄에 젖고 괴로워하게 된다. 사랑으로 인해 마음이 뿌듯한 충족감으로 젖어드는 것은 잠시뿐이고, 행여 사랑을 놓칠까 봐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면 사랑은 그 때부터 나를 묶는 끈이요, 족쇄가 된다. 함께 있으면서 사랑을 속삭일 때는 천국이 내 것인 양 행복해 하다가도, 나와 함께 있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방 원망하고 토라지고 화를 낸다면, 그것을 참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울타리 안에 가두어질 수 있을 때는 사랑의 이름으로 온갖 것을 베풀면서도, 울타리 바깥으로 한 치만 벗어나려 들면 사랑은 갑자기 돌변하여 원수 이상이 되어 버린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로 하여금 자유인으로, 독립된 인격으로 제 삶을 살게 할 일이다. 내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말 일이다. 사랑은 소유욕이 아니다. 상대를 내 울타리 안에만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것은 참사랑의 표현일 수 없다. 사랑을 가두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가둔다고 해서 가두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두어 두려고 할수록 오히려 도망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아무리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사랑의 노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집착의 끈을 잘라 버리자. 놓아 버리자. 돈도 마찬가지고, 사랑도 마찬가지다. 돈이든 사랑이든 쥐고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흘러야 한다. 돈은 부지런히 돌고 돌아야 제 몫을 하는 것이고, 사랑은 감정이 너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흘러야 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면 배가오고 님의 소식도 올 것이다.

세상에 태어날 당시 빈손이 아닌 사람도 있는가? 태어날 때는 빈손으로 와서 평생토록 그 빈손을 채우려고 애쓰며 산다. 돈을 쥐려고, 권력을 쥐려고, 명예를 쥐려고 사력을 다한다. 빈손을 채우려는 그것을 우리는 욕망이라 부르고, 욕망의 충족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 대다수는 그 게임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찬사와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 음식을 섭취한 다음에는 배설해야 한다. 배설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이치가 그러하다. 입력(入力)이 있으면 출력(出力)도 있어야 한다. 갈 때는 싫어도 다 놓고 가야 한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빈손으로 가야 한다. 내가 지금 움켜쥐고 있다고 그것이 ‘내 것’인 것이 아니다. ‘내게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는 임시 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가는 이 짧은 한 철 사는 동안 움켜쥐면서 매이면 노예의 삶이요, 조막손의 삶이다. 펼 줄 알고 놓을 줄 아는 것이 대자유인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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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7-10-10 09:40:15
철학은 본질을 탐구하고 과학은 현상을 연구한다. 그들이 다른 길로 가지만 결국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본질을 발견하면 현상을 이해하고 반대로 현상을 이해하면 본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융합한 통일장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 오른 유명한 과학자들(김정욱, 김진의, 임지순, 김필립)도 반론을 못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면 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 책을 보라! 이 책은 과학으로 철학을 증명하고 철학으로 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