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즐풍(櫛風)과 거풍(擧風)
칼럼-즐풍(櫛風)과 거풍(擧風)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0.16 18: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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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즐풍(櫛風)과 거풍(擧風)


풍류란 바람 풍(風)자와 흐를 유(流)를 쓰는 것에서 보듯 말 그대로 자연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풍류를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또는 ‘운치가 있는 일’로 풀이하기도 하고, ‘아취가 있는 것’ 혹은 ‘속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자연과 인생, 그리고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고도 부르는 풍류에는 자연적인 요소, 음악적인 요소,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적인 여러 가지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풍류에는 멋과 맛, 그리고 예술적인 모든 것들과 함께 남녀 간의 사랑도 일부 포함되기도 한다. 풍류는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이고, 멋이 있는 것, 음악을 나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겁고 아름답게 노는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옛 선인들은 풍류를 통하여 사람을 사귀었고, 풍류를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였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산을 오르기만 위한 산행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상투를 틀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망건을 벗고 머리를 풀고 바람 부는 방향에 서서 그 머리를 바람에 맘껏 날렸다. 바람으로 빗질을 하는 이 풍습을 즐풍(櫛風)이라고 했는데, 이 즐풍은 방향을 가려서 하였다고 한다. 동풍은 좋지만 서풍이나 북풍에서는 하지 않는 법이라서 그날 풍향을 살펴서 동남풍이 불어야 이 즐풍을 위한 등산을 하였다고 한다. 즐풍, 즉 바람으로 머리 빗질을 한 다음은 거풍(擧風) 단계로 접어드는데, 바지를 벗어 하체를 드러낸 다음 햇살이 내리쬐는 정상에서 하늘을 보고 눕는 것이 거풍이다.

이러한 즐풍과 거풍 습속은 인간사회에서 억세게 은폐하고 얽매어 놓았던 생리적 부분을 탈 사회화하여 해방하는 뜻도 있지만 그 목적은 실리를 취한 것으로서 자연 속에 흩어져 있는, 정(精)을 받는 동작이며 의식이 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산중에서 하체를 노출해 태양과 맞대면시켰던 거풍 습속은 양(태양) 대 양(성기)의 직접적인 접속으로 양기를 공급받을 것으로 믿었던 유감주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도 남도에서는 거풍재, 거풍암 등의 지명이 남아있고, 속담에 ‘벼랑 밭 반 뙈기도 못 가는 놈 거풍하러 간다.’라는 말을 보면 거풍 풍습이나 즐풍 습속이 보편화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 현대인들은 놀 줄을 모른다. 노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 밥 배불리 먹고 술 마시고 2차를 가서 ‘돈 받고’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돈 주고’노래를 부른다. 그나마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곡에서부터 가요 또는 팝송까지 그래도 몇 곡씩은 할 줄 알았는데 노래방 세대가 되다보니 노랫말이 화면에 뜨지 않으면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옛 사람들은 어떻게 놀았을까? 정월 초하루, 정월 대보름, 삼월 삼짇날,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칠월 백중, 팔월 한가위, 구월 중양절, 십일월 동짓달 등 달이면 달마다 그 달에 맞는 놀이를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서로 동질성과 대동정신을 함양했다. 특히 삼월 삼짇날은 나라에서 노인들에게 봄기운을 맞게 하려고 노인잔치를 열었으며, 진달래꽃으로 떡과 국수 술을 만드는 놀이를 벌이기도 하였다. 백중에서 중양절 무렵까지, 서로 가까운 곳을 정해 만나서 놀다가 헤어지는 반보기나 봄가을 냇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겼던 천렵놀이나 봄나물을 뜯으며 즐겼던 상춘(常春)놀이는 일반 대중의 놀이였고, 선비들은 정자나 누각에서 좋아하는 몇 사람이 만나서 시를 읊으며 세상을 논하였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는데, 산천 유람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최상의 놀이였다. 또 요즘 중요시 하는 태교(胎敎)를 보자. 옛 사람들은 자연에서 그 태교법을 찾았는데, 솔잎 스치는 바람소리와 댓잎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맑고 청아하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태교로 활용했다.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필자는 분재가꾸기를 취미생활로 하면서 지난 40여 년간 분재를 캐기 위하여 미답의 산을 다녔다. 등산객이 다니지 않는 깊은 산속을 헤메이다. 바위 정상에 오르면 아무도 보는 눈들이 없으니 거풍을 맘껏 즐기면서 태양의 기와 바위의 기를 듬뿍 받아 오기도 했다. 이번 주말에는 단풍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바위산에 가서 거풍이나 실컷 즐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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