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제72주년 경찰의 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계기 돼야
세상사는 이야기-제72주년 경찰의 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계기 돼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0.22 18: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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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

문남용/거창경찰서 수사지원팀장 경위-제72주년 경찰의 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계기 돼야


갓 떠오른 발간 홍시빛깔 태양이 아침 출근길을 비춘다. 골목에는 밤새 찬 이슬에 떨었던 옥잠화의 가녀린 하얀 꽃잎이 생명의 햇살에 웃는다. 파란 하늘과 꽃구경을 하면서 걸어서 직장에 도착했다. 거창경찰서 현관에 ‘국민의 경찰 정의로운 대한민국’ 펼침 막 문구가 보였다.

지난 10월 21일은 제72주년 경찰의 날이다. 필자는, 1997년 3월 5일 거창경찰서에 첫 발령받아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경찰관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96년 6월 초순,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일날 저녁이었다. 아버지께서 “파출소 게시판에 경찰공무원 시험 공고가 났던데 경험삼아 도전해 보라”는 말씀을 했다. 군에서 제대 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두 달 후에 시험이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실망을 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이 어려웠던 운으로 합격했다.

필자는 20년 경찰 경력 중 17년 넘게 수사부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살인·성폭력 범죄를 비롯한 강력사건과 변사사건, 사이버 범죄, 고소·고발 민원사건 등 많은 사건을 처리했다.

2002년 4월,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사망 129명, 부상 37명)의 사망자 신원확인 업무에 참여했고, 2006년 11월 말에 발생한 살인 사건 피의자 검거 유공으로 특별승진이라는 큰 상을 받기도 했다. 꾸준히 공부한 덕분에 우수지식인 선정과 동료강사 활동도 하고 있다.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2010년 2월 초순,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서 형사당직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20대 초반의 남성이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찾아 달라”며 찾아왔다. 추운 겨울 저녁에 찾아온 민원인에게 분실업무 담당 부서만 안내하기에는 미안했다.

따뜻한 커피 한잔 대접해서 몸을 녹이고 갈수 있도록 자리로 안내했다. 의사 표현이 서툴렀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민원인은 지적장애 2급이고, 부모님도 지적 장애를 갖고 있었다. 60대 남성이, 단칸방 월세 집에 찾아와 라면을 끓이게 하거나 겁을 주면서 집안을 뒤지기도 했단다. 이 남성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겼고, 계속 찾아와 괴롭힐까 봐 무섭다고 했다. 곧바로 함께 집으로 가서 어머님에게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위로와 안심의 말씀을 드렸다. 얼마 후에 용의자의 소재를 파악해서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피해자에게 돌려주었다. 가족들이 찾아와 “그 남자가 이제 찾아오지도 않고 휴대전화도 돌려받아서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범죄 수사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 가는 과정’이다. 살인 등 강력사건 뿐만 아니라 범죄 피의자의 마음을 얻어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쉽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직접적인 증거나 참고인 진술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접근으로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하는 정성과 노력이 더 효과적이었다. 피해자가 “도움 받지도 못하면서 부끄러운 과거만 말하고 오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경찰서 앞에서 몇 번씩이나 발길을 돌렸다가 다시 찾는 경우도 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와 먼 미래가 함께 오고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백 마디 홍보문구보다 ‘선입견을 버리고 민원인의 말 아래로 흐르는 본심을 읽어내는 진정어린 경청의 태도와 관심’의 자세가 필요하다.

“경찰은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국가의 얼굴이다”라는 대통령의 말씀이 엄중하다.
필자가 먼저 어린이와 여성,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따뜻한 햇살이 되는 경찰이 되도록 노력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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