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도덕의 탄생
아침을열며-도덕의 탄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0.23 18: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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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도덕의 탄생



“내가 그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면 할수록,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해지는 경탄으로 내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내 위에 있는 저 별하늘,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이 도덕률”

철학자 칸트의 명저 {실천이성비판} 결론부 첫 구절이다. 이 말은 그의 묘비명으로도 새겨져 있다. 그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덕률’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탄해 마지않았다.

도덕법칙! 숭고한 말이다. 쉽게 풀어 말해 ‘이런 건 해도 되고 이런 건 하면 안 된다는 의식’ 그게 도덕 법칙이다. 이게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이게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경우에 따라 우리는 이걸 다른 말로 ‘정의’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도덕률이 칸트의 생각처럼 아프리오리하게(선천적으로)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것일까? 성선설을 말한 맹자라면 그렇다고 할 것이고 성악설을 말한 순자라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건 곧잘 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논쟁에 대해 중재를 하는 편이다. 둘 다 맞기도 하고 둘 다 틀리기도 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도덕법칙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은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부도덕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도덕은 그렇게 ‘가능적’인 것이다. 실제로 도덕적인 인간도 있고 부도덕한 인간도 있는 현실이 나의 이런 학설을 입증해준다.

프로이트의 이론도 하나의 방증이 된다. 그는 우리 인간을 ‘욕망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욕망은 쾌락의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 쾌락을 주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추구는 끝도 없다. 그게 욕망이다. 그건 유아기의 리비도에서 시작해 이윽고 돈, 지위, 명예 그런 것을 향해간다. 그게 사람의 원리고 삶의 원리고 세상의 원리다.

그런데 욕망하는 존재인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남’ ‘타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성장과정에서 자기의 이 욕망에 대한 ‘제지’가 가해진다. 그것을 프로이트는 ‘외적 권위’라고 부른다.

‘아버지’가 그 상징이고 대표다. 그런데 이 외적 권위가 성장과정에서 내면화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데 그 결과 자기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이 다름아닌 도덕-윤리라는 것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이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론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특히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외적 권위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도덕의식이 희박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만 아는 이른바 ‘나만주의’ ‘나먼저주의’가 팽배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만 봐도 그건 금방 확인이 되고도 남는다. 축제 뒤의 쓰레기더미는 단골 사례다.

산책길에 어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은행나무 아래다. “아니 은행을 주워가는 건 좋지만 여기서 발로 짓뭉개고 알맹이만 가져가시면 어떻게 해요. 사람 다니는 길인데 냄새 풍기잖아요” “남이사 그러거나 말거나 무슨 참견이에요. 아저씨 집 앞도 아닌데” 대충 그런 공방이었다. 상황은 곧바로 이해되었다. 어느 쪽이 도덕적이고 어느 쪽이 그렇지 않은지는 불문가지다. 명약관화다. 이 경우 아저씨의 이의제기는 철학에서 ‘비판’이라 부르는 것과 통한다. 그것은 ‘사회적 금지’라 불러도 좋다. 그런 것이 도덕인 것이다.

선진국인 독일 사회에는 ‘금지’라는 말이 너무도 자주 눈에 띈다. 예전에 레닌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이 말이 너무도 많아 “금지, 금지!”[금지라는 말, 사용 금지!]라고 중얼거렸다는 농담이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사회에는 이 ‘금지’가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쉽게 허용되고 통용된다. 그게 우리사회를 무질서하게 부도덕하게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싸움이 있었던 그 은행나무 아래를 며칠 후 다시 지나가게 되었다. 같은 아주머니가 이번에는 은행을 발로 짓뭉개지 않고 비닐봉지에 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그 장면을 지나치면서 문득 ‘도덕의 탄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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