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함안의 가을 풍경
기고-함안의 가을 풍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1.08 20:0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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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석/전 통영부시장·자유한국당 부대변인

이학석/전 통영부시장·자유한국당 부대변인-함안의 가을 풍경


전국의 지자체들은 가을을 맞아 축제며 관광코스 홍보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예전부터 가을은 많은 별칭을 갖고 있다.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등등은 모두 가을을 의미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역시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경남의 경우만 해도 이맘때쯤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동군 북천면엔 코스모스축제로 조용했던 마을이 사람을 모으는 장소로 둔갑한다. 우리 어릴 적 등하교길에는 유난히 코스모스가 많았다. 길가에 하늘하늘 핀 코스모스와 벌들의 윙윙거림은 대부분 다 경험해 봤으리라. 그러므로 북천 코스모스축제는 이런 향수를 달래기엔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북천 거쳐 섬진강, 악양 토지마을을 돌다보면 금세 하루가 간다.

창녕 남지는 수만 평의 봄 유채밭이 장관인데 가을이면 그곳에 백일홍을 심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낙동강 주변에 심은 백일홍은 가을 햇살을 받아 자태를 뽐낸다. 그 꽃밭과 함께 남지철교를 구경하고, 창녕이나 영산구경하다 보면 금방 하루가 간다. 통영은 사철이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엔 쪽빛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환상적이다. 배가 지난 자리에 햇살무늬인 윤슬이 멋지게 아롱댄다. 그런 아름다움을 관광과 연계시켜 섬관광을 촉진시키고 지역 경제를 풍성하게 이끈다.

이렇듯 지자체마다 그 특성을 내세워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아이디어를 집중시킨다. 그렇다면 우리 함안의 가을은 어떤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그리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어느 지인께서 찾아와 하는 말 “함안 둑방은 살리기만 하면 최고의 명소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그동안 함안이 둑방을 소재로 한 관광에 한눈을 팔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함안둑은 그 역사도 길고 사연도 많다. 강을 따라 난 이 둑은 총길이만 해도 338Km에 이르며 국내에서 가장 길다. 이 명소를 어떻게 거듭나게 할까.

지리산에서 발원된 강은 남해바다를 향해 동남진해 온다. 그 물길은 동남쪽에 가로놓인 여항산에 막혀 북쪽으로 길을 든다. 다시 말해서 낮은 곳을 찾다보니 북진하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군북제 어름이다. 강은 굽이굽이 휘어지며 흐르는데 기름진 함안들판은 이 강이 만든 보고다. 그렇게 물길은 북으로 오르다 대산에 이르면 북쪽에서 내려오는 낙동강을 만나 합류한다.

진주댐이 건설되기 전의 남강은 큰 비가 오면 들판과 마을을 범람시켜 온통 물바다를 만들곤 했다. 그런 아픈 역사를 극복케 한 것이 바로 둑이다. 함안둑은 범람을 막고 들판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땀의 결실인 것이다. 백곡교는 함안과 의령군의 경계다. 이물리 나루터에서 시작되는 둑은 이름 하여 악양제, 이 둑을 쭉 걸어가면 악양 누각 아래 ‘악양둑방’으로 이어진다. 이 둑방엔 꽃들이 피어 있는데 간혹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문제는 꽃양귀비, 파란 수레국화, 붉은 끈끈이대나물 등속의 주로 여름에 피는 꽃들이라 그늘이 없는 둑길에선 햇살의 고통을 함께 수반한다.

며칠 전 해가 기우는 이른 저녁 무렵에 이곳을 찾았다. 지난 9월에 본 백일홍만큼의 미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리 허전하진 않았다. 그 시각 함안둑의 노을은 일품이다.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언덕에 다소곳이 앉은 악양루가 멋진 광경을 연출해 주고 있었다.

둑은 여름보다는 가을이 제격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둑마다 테마를 달리하여 가꾼다면 더 없이 좋은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합강정 가는 대산 둑엔 맨발 산책길을 만든다거나 또 다른 곳에는 억새나 구절초 같은 꽃을 심어 가을에도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한다면 도시인들의 머릿속에 아름답게 각인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둑길엔 작은 쉼터와 함께 풍차가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하지만 꼭 이런 곳에 네덜란드를 연상시키는 풍차를 만들어 세워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작은 조형물이라도 우리 함안다운 그 무엇은 없을까. ‘메밀꽃 필 무렵’의 본 고장 봉천에 메밀꽃이 만개해 있고, 물레방아의 고장 함양에 물레방아가 있듯 함안엔 함안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것을 만들어 두면 어떨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둑을 걷는데 벌써 어둠이 찾아온다. 가을 둑방의 추억을 지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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