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단풍 그리고 석양
진주성-단풍 그리고 석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1.23 18: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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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단풍 그리고 석양


올해는 유난이도 단풍이 화려했다. 가을볕이 두텁고 예년과는 확연히 다르게 밤낮의 기온 차가 컸고 적당한 수분과 적정한 기온의 하강이 산야의 단풍을 곱게 물들였다.

가뭄이 심하면 겉말라버리고 갑자기 된서리를 맞아도 거무충충하게 시들어져 아예 가랑잎으로 떨어져버리기도 하고 고작 우중충한 황갈색으로 물들어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기도 전에 가랑잎 되어 흩날려버리는데 올해는 잎이 먼저 지는 배나무마저도 샛노랗게 물들고 감나무 이파리도 떨어지지 않고 단풍으로 물들어서 제각기 제멋을 마음껏 뽐내면서 적(赤)과 청(靑)이 어울리고 홍(紅)과 녹(綠)이 어우러져 색선도 고운데다 적과 홍의 어우름에 황(黃)이 있어 더욱 곱다.

고산준봉 깊은 골도 빛깔 곱게 물들었고 만학천봉 능성이도 오색으로 영롱하고 심산유곡 갖은 산색 어절시구 어우러져 앞뒤산도 단풍이고 길섶도 단풍이고 강변도 들녘도 오색으로 영롱하여 사방에 지천으로 단풍으로 물들었다. 설악산이 아니면 어떠하고 주왕산이 아니면 어떠한가, 내장산이 아니라도 좋고 뱀사골이나 피아골이 아니라도 이산 저산 앞 뒷산이 색색으로 물들어서 영롱하고 찬란하여 황홀경을 이루었다.

파랗던 잎 빨갛게 물들이려고 얼마다 많은 밤을 하얗게 새웠으며 노랗게 물들이려고 또 얼마나 많은 찬이슬을 맞았을까. 눈 녹자 이른 봄에 연두빛깔 어린순은 늦서리 내릴까 밤새우며 떨었지만 봄볕 한가득 축복 같이 받으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푼 꿈을 키워 왔고 작열하는 태양과도 서슴없이 마주섰고 폭풍우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으려고 다부지게 대응하고 먹장구름 위협이나 천둥번개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지루한 장마에도 꿋꿋하게 견뎌내며 무모하리만치 겁 없이 맞섰으나 오로지 젊음이 있어 결코 만용이 아니었고 희망이었고 도전이었다. 속절없는 세월 속에 밤이슬 차가워지니 원한도 풀어 놓고 미움도 떨쳐내고 먼 길 떠날 채비에 풀벌레도 멀리하고 마지막 단장에 아낌없이 남김없이 전부를 바친다. 어찌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가 있으랴.

떠오르는 태양은 찬란하지만 장엄하지 못하고 중천의 태양은 장렬하지만 엄숙하지 못하고 노을에 물든 석양은 영롱하고 장엄하다.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며 저마다의 빛깔로 오색으로 물든 단풍은 노을에 물든 석양과도 같이 먼 길 떠날 마지막 차림새에 숭고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노을 진 석양은 숭고하며 장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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