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 동상
칼럼-세 동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2.04 18:47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세 동상


미국 LA 부근에 가면 ‘리버사이드카운티’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그 도시 시청 앞 공원에는 세 동상이 있다. 맨 앞에는 흑인 인권운동을 이끌다가 암살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있다. 동상에는 그의 유명한 연설문 첫머리에 나오는 ‘나에게는 꿈이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중의 한 문구이다. 이스라엘의 세 번째 선조인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들은 네 어머니의 태생이었기 때문에 서로 시기와 질투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태어난 요셉을 각별히 사랑했다. 그래서 다른 아들들은 일터로 장기간 내보내는 일이 있어도 요셉은 언제나 아버지 곁에 머물게 했다. 그런데 철없는 요셉은 자주 꿈을 꾸고는 그 내용을 가족들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그 꿈은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면서 살려주기를 애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들까지도 자기에게 절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움을 사고 있었는데 꿈 애기까지 해서 형들의 원심을 더해주곤 했다. 한번은 여러 형제들이 먼 곳으로 가 양 떼를 지키면서 목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며칠 동안 집을 비우더라도 형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가보고 안부를 전하라는 당부를 했다. 요셉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본 형제 가운데 하나가 “저기 꿈쟁이가 온다. 이번 기회에 요셉을 죽여버리자.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들짐승들에게 잡아먹힌 것 같다고 하면 될 것이다”고 제안했다. 요셉을 마땅치 않게 여겼던 형제들이 동의했다. 그래서 어떻게 죽이느냐고 상의할 때 한 형이 죽여서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물이 없는 우물에 처넣으면 굶어 죽을 테니까, 그 방법이 좋겠다고 했다. 형제들은 요셉을 빈 우물에 쳐 넣어버렸다. 그때 마침 이집트로 가던 대상들이 지나가자 형제들은 다시 의견을 모은다. 요셉을 돈을 받고 팔아버리면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요셉을 다시 우물에서 끄집어내어 팔아넘기게 된다. 그 요셉이 후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형제와 아버지를 가뭄에서 구출해 이집트로 이주해 오도록 이끌어준다는 얘기다. 킹 목사는 흑인들의 인권운동을 하다가 암살당한다. 그러나 그의 꿈은 성취된 셈이다. 그래서 지금은 흑인들의 법적 지위와 자유가 보장받게 되었다.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기도 했고 흑인 여자 국무장관까지 나오게 되었다. 백인들이 지배하는 나라에 흑인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더욱 감명이다.

그 다음 자리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선생은 철이 들면서 나라를 빼앗긴 한을 풀고 그 책임을 담당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우선 스스로가 힘을 길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고 배우는 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신으로 선진국인 미국으로 찾아갔다. 그러자 당장 발붙일 곳이 없었다. 마침 그 일대가 오렌지 농원이었기 때문에 한 농장주를 찾아가 고용해줄 것을 간청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농장주는 도산의 자세와 인품에 감명했고 그를 믿게 되었다. 얼마 후에 도산은 그곳을 떠났고 긴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 젊은이가 후에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서 민족을 위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재미 한국인들의 협력을 얻어 동상을 세우게 된 것이다.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의 동상을 세우는 그곳 유지들의 마음은 우리를 더욱 감동케 한다.

세 번째로 세워진 것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다. 그도 뜻밖의 인물이다. 킹 목사가 백인이 아닌 흑인이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인이 아닌 한국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지도자의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또 2015년에는 간디의 동상이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 광장공원에 건립되기도 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그 어떤 영국 위인들보다도 간디를 더 흠모하고 존경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 사람의 일생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세 사람 모두가 역경 속에 태어나 정의사회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걷다가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킹 목사는 폭력에 의한 죽음을 맞이했고, 간디는 종교적 제전에 참석하기 위해 가다가 한 젊은이가 쏜 총에 맞았다. 도산 선생은 일제의 강압을 받다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나 일생보다도 더 귀하고 높은 목적이 있었기에 그것을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