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외수 사태와 어설픈 행정
현장에서-이외수 사태와 어설픈 행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2.27 18: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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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제2사회부 부장(함양·산청)

박철/제2사회부 부장(함양·산청)-이외수 사태와 어설픈 행정


지난주부터 이외수 작가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연일 보도를 타며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애초 의도야 어떠했든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화천군은 “이외수 떠나라”, 함양군은 “귀향 대환영”의 형국이다. 벌써 이외수가 화천과 결별하고 함양으로 이주하는 걸 기정사실화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성급한 일이다.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음을 간과하고 있는 거다.

지난 18일 강원 화천군의회는 이 작가에게 감성마을에서 나가라고 공식 요구했다. ‘토사구팽’, ‘자업자득’ 등 뒷말이 많다. 같은 날 이 작가는 함양여중에 와서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어떤 형태로든 함양에서 집필활동이 이뤄질 것임을 암시했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의 실마리는 그동안 함양군의 행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군은 지난 2014년부터 ‘이외수문학관’ 건립 계획을 추진하며 군수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여러 차례 이 작가를 찾아가 교감해왔고, 이 작가도 함양을 수차례 찾으며 화답했다. 군은 애초 10억 원가량의 예산으로 함양 안의면 율림리(밤숲)에 문학관 설립을 추진했다. 이곳이 토지 매입 등 여러 문제로 지지부진하자 군은 올 초 이를 수정해 작가의 고향인 수동면 상내백초등학교를 매입, 60억 원을 들여 이외수 ‘함양문화테마촌’으로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시설계용역에 나서고 경남도에 재정투융자심사도 신청했다. 경남도와 문화관광부가 생존 작가의 문학관 건립에 국도비 지원근거가 없다고 하자 명칭만 바꾼 거다.


경남도는 ‘함양문화테마촌’에 대해서도 “투융자심사, 토지 확보, 토지 보상 등 사전행정절차를 다 거치고 나야 예산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며 부정적이었다. 그러자 군은 8월께 다시 방향을 틀어 안의면 율림리 전통놀이체험공방에 이 작가의 거주공간 등을 만들었다. 2007년 준공한 이 공방을 5억여 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용역비를 비롯한 예산은 줄줄 새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군은 향후 인근 부지에 ‘이외수문학관’을 건립해 전시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라며 ‘문학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작가로선 함양군의 이런 태도에 근거해 화천을 떠나도 함양에 대안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런 믿음으로 “함양서 집필하겠다”고 말했을 수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 ‘선 진행 후 통고’식의 함양 행정의 고질병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화천군으로선 조강지처인 화천을 배제하고 밀월관계를 만들어가는 함양과 이 작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고, 그것이 이번 사태의 한 빌미가 됐을 수 있다.

함양 민심은 아직 이외수문학관에 대한 전폭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개인 자격으로 고향인 함양으로 돌아오는 건 자유지만 군이 거액의 세금을 들여 생존작가에게 특혜를 주는 데는 의견이 갈린다. 차후 기대에 못 미치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경우 그 후폭풍은 함양군뿐만 아니라 이 작가 본인도 피해가지 못할 것이기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함양군의 이외수문학관 건립에 대한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일방적인 사업 추진 △건립 후 사후 유지관리 문제 △작가의 이미지와 문학적 평가 논란 △작가의 대중적 지명도에 의존한 경제유발효과에 치중 △중복투자로 인한 예산낭비 우려 △특정 생존 작가에 대한 파격대우 시비 △타 분야 예술가와의 형평성 시비 등 숱한 논란이 붙어있다.

문학관이나 특정문인 관련 기념관 등은 작가의 삶의 자취가 남아 있거나, 작가의 작품이 뒷받침되거나, 명작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생명력 있는 문학기행 명소가 될 수 있다. 하동의 토지문학관(대하소설 ‘토지’ 배경)이나 통영의 박경리기념관(작가 출생지, ‘김약국의 딸들’ 배경) 같은 곳이 좋은 예다. 함양과 이외수 작가는 어디에 해당될까?

수구초심이라고, 대작가의 귀향은 좋은 일이다. 다만 일부 사람들의 어설픈 추진으로 여러 잡음이 생기고 차후 문제될 소지가 뻔하기에, 여론에 귀 기울이고 여러 경우의 수를 미리 따져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철/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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