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골마을의 사생활
기고-시골마을의 사생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08 19:1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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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숙/산청 간디숲속마을
 

윤인숙/산청 간디숲속마을-시골마을의 사생활


한 작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큐멘타리 3일에서 우리마을 귀농귀촌인의 삶을 찍고 싶답니다.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방송 타면 마을기업 상품이 알려질 수도 있겠네, 아니야 방송 싫어하는 사람들 많을거야.’ 생각은 다양할테니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마을밴드에 올리고 의견을 부탁했더니 다섯 명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조용히 살고 싶어요. 외부에 노출되는 게 싫어요. 요즘 언론 보면 도저히 마음이 안 열려요.”, “제 모습 전파 타는 거 딱 질색이에요”, “출연 거절합니다”, “방송을 신뢰하지 못하고 연출된 모습이 싫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상품화되고 싶지 않습니다. 방송출연으로 마을주민 의견이 나눠지는 게 싫습니다.”, “만약 촬영한다면 저희 집은 배경으로도 안 나오게 해 주세요. 직접 경험한 일을 적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눈꼽도 못 뗀 상태로 내 집 마당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줌마, 방송에 나온 그 아줌마 맞지?“ 라는 말을 들었고,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이사갔어요” 했더니 “거짓말하지 마소, 그 사람 맞는데” 하고 따라다녀서 집안으로 피해 들어왔습니다. 마을에 처음 들어와 살 때 일입니다”

모두 반대의견이었습니다. 언론 불신도 있지만, 마을 초창기에 방송을 탄 후 있었던 외지인들의 사생활 침해 경험이 컸습니다. 5년 전 마을에 집을 얻으러 다닐 때 비어있는 집 중 하나가 인간극장에 나온 집이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티비를 켰다가 간디학교 부부교사 이야기라 재밌게 본 기억이 나서 다시보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집만 잡히고 마을풍경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 참 이상하게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을에 들어온 후 그 이유를 들었습니다. 마을 초창기에 유정란 하는 분이 인간극장에 나왔는데,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마을에 찾아와 이집 저집을 기웃거렸답니다. 그 경험으로 주민들에게는 방송기피 현상이 생겼는데, 몇 년 뒤 또 방송촬영을 한다고 하니 주민 대부분이 자기네 집은 나오지 않게 해달랬다네요. 방송촬영 시의 규칙도 그때 생겼구요. 냉담한 주민들의 반응에 그 교사부부는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답니다.
밴드에 글을 올린 다음날, 아직 침대에 누워있던 일요일 아침,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지? 창문으로 내다보니 산책 중인 사람 중 한 명이 마당에 들어와 꽃밭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전, 주인장 출타한 이웃집 마당을 무리지어 구경하던 사람들도 떠올랐습니다. ‘아 이런 거구나. 방송은 거절이다.’ 바로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아랫집인 천문대에는 주말마다 별손님들이 옵니다. 아침에 나가 풀을 뽑고 있으면 가끔 부지런한 손님들이 우리집을 거쳐 마을 한 바퀴를 산책합니다. 그들이 가까이 오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합니다. 내 집 앞을 지나가는 외지인이 반갑기보다는 불편한 거죠.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면 인사를 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인사를 안 하게 됩니다. 저에게 먼저 인사하는 손님은 거의 없습니다. 지나가다 호기심이 일면 잠시 멈춰 꽃이나 풀의 이름을 물어보기는 합니다. 그러다 주인이 안보이면 남의 집 마당에 들어서기도 하는 거겠죠. 천문대에서는 마을주민들의 생활공간을 존중해달라고 당부하지만, 방문객에게 시골마을은 관광지이고 주민들은 호기심의 대상일 뿐, 존중의 대상은 아닌 거 같습니다.

체험마을이나 관광지가 된 곳의 일반 거주자들이 외지인들의 방문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을 겪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벽화를 그렸다가 유명해져서 관광지가 된 마을의 사생활 피해는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벽화를 지우기도 했다지요. 산골생활이 방송에 나간 후 방문객 폭주로 산골을 떠나야 했던 젊은 부부 이야기도 있지요. 얼마 전에는 남해의 독일마을에서도 주민들이 떠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들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남의 동네에 대한 호기심은 배려와 존중이 함께 가야 합니다. 시골은 인심이 좋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골사람들에게도 사생활은 중요합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러 차 한 잔 주고받는 게 시골살이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편안하게 쉬고 싶을 때는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혼자 쉬고 싶을 때는 제주도 정낭처럼 입구에 나무를 걸쳐놓거나 노란풍선을 띄워서 알리는 방법이 필요하다구요.

마을이 알려지면 마을기업의 상품 판매가 많아질 수도 있고 체험하는 집에는 손님이 많아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상당수의 주민들은 조용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저도 그렇고, 마을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지금, 두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만, 지금 생각은 천천히, 느리게 가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피고 돌아다닌 국내외의 작은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모르고 끼친 불편에 대해서도 깊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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