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적선 대가 서상필(徐相弼)선생
진주성-적선 대가 서상필(徐相弼)선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10 18:27
  • 1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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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적선 대가 서상필(徐相弼)선생


서상필(1892~1955)선생은 서기 1892년 5월 13일 진주시 봉래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달성 서씨 서달서(徐達瑞)이고 모친은 여산 송씨 송복모(宋福慕)이시다.

서상필 선생은 천성이 활달하시고 남의 어려운 처지를 즉시 도우시고 자선 독지할 곳을 찾아다니시며 친히 도우시는 분이었다.

15세 되던 해인 1907년 4월 천양언(千良彦)의 딸인 천재성(千載成)과 혼인해 장남 서병옥을 낳았다.
모친 천재성은 진주 시내를 걷다가 현금을 주웠는데 사방으로 다니며 돈을 잃은 주인을 찾아주신 분으로 그 당시 신문에 보도되었다.

1920년대 초기에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운동이 전개될 때 발기인으로 동참하시고 그 당시로는 거액인 2000원을 기부한 분이다.

1923년 해외 동포 위문 공연이 촉석루에서 개최될 때 매회 10원(쌀 3가마)씩 기부하신 분이다.

1923년 6월 상대동에 사는 빈민 49호에 대하여 매호마다 백미 2말씩 나누어 지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중외일보 1927년 12월 12일자와 1930년 4월 5일자에 보면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시고 숨은 교육 공로자로 각각 보도되기도 했다.

1928년 4월 진주 평안동에 사는 빈민들을 위해 백미 4석을 나누어 지급했다는 내용은 동아일보 1928년 4월 30일자에 보도되었다.

진주제일 야학회와 제3야학교를 설립할 때 희생적으로 동참하시고 제일야학회에서 매년 필요한 경비 400원을 부담하여 무산아동들을 위해 사용케 했다.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남해대교 부근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초상화와 묘가 모셔진 있는 충렬사(忠烈祠)를 중건할 때 협력하시고 1932년부터 진주후원회를 조직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와 항일충절정신을 고양시키는 공적을 쌓은 분이다.

1936년에는 보통학교인 진주봉래초등학교 기성회 회장으로서 1천원을 기부한 분이다. 또 1934년에는 임진공신 들을 모신 창렬사를 중건할 때 중건위원으로 수 백 원을 기부했다.

진주성내 서장대(西將臺)를 재건축할 때 단독으로 부담한 일은 큰 공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광복이후 도청환원운동을 전개하시고 파손된 촉석루(矗石樓)를 건축할 때 1958년부터 협력하신 분이다.

1955년 3월 26일 만 63세 때 진주시 봉래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손자녀들 서정기, 서정영, 서정도, 서정준, 서정우, 서정순, 서정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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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필 후손 2018-01-24 14:55:31
서상필 조상의 빛을 보게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연락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