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발효식품의 세계화…“슬로푸드에 답 있다”
전통발효식품의 세계화…“슬로푸드에 답 있다”
  • 박철기자
  • 승인 2018.01.16 18:20
  • 1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 자락 함양 휴천면 도리촌 영농조합법인

▲ 함양 휴천면 도리촌 영농조합법인 건너편 산에서 바라본 전경.
#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다. 미국의 한 영화감독이 패스트푸드(Fast Food)의 대명사인 맥도날드 메뉴만 한 달 동안 먹으면서 몸이 어떻게 변하는가 지켜본 결과물이다. 몸무게는 11킬로그램이 늘어나고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 간기능 저하 등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몸무게가 돌아오는 데만 14개월이 걸렸다. 패스트푸드 천국 미국. 세계 최고의 비만율을 자랑(?)하는 미국인들은 성인의 절반 이상, 어린이의 4분의 1 정도가 비만이나 과다체중이다.

이 같은 패스트푸드의 폐해에 대해선 이미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 패스트푸드는 일에 치여 삶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비극과 불행을 상징한다. 먹는 일은 내 몸과 영혼을 공양하는 것이다. 그만큼 정성과 깊은 자존감이 필요하다. 패스트푸드는 자기 심신을 스스로 박대하는 것이다. 몸이 그 박대에 대해 어떻게 피드백을 할지는 자명하다. 현대인의 각종 질환의 뿌리가 여기 있다. 패스트푸드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인류는 이제 전통방식의 슬로푸드(Slow Food)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먹거리 세계화 꿈꾸는 사람들 모여
슬로푸드 테마 공동체…관련시설 임대  
청정자연 속 ‘장독 분양’ 전통문화 알려
  
콩 등 필수원료 지역주민 계약재배 추진
시골마을에 활력 불어넣어 호감도 상승
체험관광 등 6차산업화 농가 소득 기대 

▲ 눈덮인 장독대.
◆K-food 세계화의 꿈 = 지리산 자락의 한 외진 마을에 우리 전통발효식품, 즉 슬로푸드의 가치를 세계화하려는 꿈이 영글고 있다. 지리산 북동쪽 기슭에 안긴 경남 함양군 휴천면 진관마을을 지나 지리산 쪽으로 좀 더 올라가다보면 첩첩 산줄기에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가 넓게 펼쳐져 있다. 법화산(993m), 삼봉산(1187m) 등 지리산 줄기들이 원근에 겹겹이 둘러앉아 정기를 쏟아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리산 쪽으로 몇 km 더 가면 2016년 구여권의 모 대선주자가 서울에 있던 선조의 묘를 이장해놓은 곳이 있다. 반룡농주형(盤龍弄珠形·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의 명당이란다. 우리 같은 문외한들이야 풍수지리에 대해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 근처가 지리산의 좋은 기가 모이는 곳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 명승지에 아늑히 자리 잡은 6만6000여평의 땅에 우리 먹거리의 세계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기치는 ‘도리촌 영농조합법인’(대표 강진숙·함양군 휴천면 미천진관길)이다. 현재는 작업장과 식당, 모임, 숙박 등 용도가 다양한 건물 한 채와 널찍한 마당 한켠으로 메주콩 작업장과 아궁이, 창고 등이 조성돼 있다. 주변 산자락들에는 장독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는 여러 공간들이 있다. 그곳의 된장, 간장, 고추장 들은 청정한 산의 정기와 바람과 햇볕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앞으로 마을 조성이 본격화되면 삼신궁을 비롯해 20여채의 집과 관련시설들이 들어서고 임대 형식으로 사람들이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호텔까지 계획돼 있단다. 슬로푸드를 테마로 한 공동체, 테마촌 같은 게 만들어지는 거다.

▲ 한 회원이 마당 한쪽에 늘어선 가마솥에서 국산콩을 삶고 있다.
지난 10~11일 눈으로 온통 은세계가 된 이곳에서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건강한 먹거리 만들기 행사’가 열렸다. 전국서 모여든 회원과 조합원들이 전통방식으로 콩을 쑤고 메주를 만들었다. 이날 이들이 정성들여 만든 메주는 청정자연의 바람과 햇볕을 머금고 잘 띄워져 항아리 장인이 전통방식으로 제대로 만든 숨쉬는 장독 속에서 숙성하게 된다.

◆명분이 확고하면 비전이 따른다 = 푹푹 쌓이는 눈발 속에 도리촌 영농조합법인을 찾아갔다. 눈에 덮인 지리산 자락 골짜기의 운치는 이 세상이 아닌 듯했다. 홍보 등 업무를 총괄하는 강은숙(43·여) 감사와 강덕중(65) 이사 등이 나와서 반긴다. 이날 먹거리 만들기 행사 중이라 여러 사람들이 콩 삶고 찧고 메주 만들고 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자리에 앉자 강은숙 감사는 대뜸 “우리가 추구하는 건 우리 전통 발효식품, K-food의 세계화”라며 “그래서 세계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된장, 간장, 고추장 같은 전통식품은 모두 슬로푸드다. 한식, 특히 콩을 주원료로 한 우리 발효식품이 건강에 좋은 건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며 한식예찬론을 꺼낸다. 그는 “이곳에는 장이 9년 된 것이 있다. 10년째부터 약으로 쓴다. 그러면 세상 밖에 내보낸다. 다른 곳은 3개월 만에 장을 뜨지만 우리는 1년 만에 뜬다”며 제대로 된 슬로푸드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우린 장을 담아서 판매하자는 게 아니다. 회원들이 자기 장을 직접 담그면 그걸 청정자연 속에서 관리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가치와 건강을 그 속에 담아주는 작업을 우리가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어디에도 없다. 수천 년 전통을 세계적으로 확산하자는 일종의 사회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명분이 확고하니 비전도 따른다.”

그 말을 듣자 웰니스(wellness)가 생각났다. 웰빙(well-being)+행복(happiness)+건강(fitness) 말이다. 취지는 좋은데 판매도 하지 않고 어떻게 이익을 내거나 유지한다는 얘길까? 강덕중 이사가 산중턱 곳곳에 놓여진 장독들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 옛 방식 그대로 숨쉬는 장독을 만드는 강호용 장인.
“저 많은 장독이 다 숨쉬는 장독이다. 이름표(장독 소유자=회원)도 다 붙어 있다. 중국, 일본 사람들도 회원이 되어 자기 장독을 보관 중이다. 그들 외국과는 자매결연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청정자연 속에서 제대로 만들고 숙성시키며 보관하다가 회원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택배로 보내준다. 회원들은 관리료 1만원씩만 내면 된다.”

듣고 보니 일종의 ‘장독 분양’ 같은 개념이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은 하루라도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우리 식생활과 건강의 원천이다. 이렇게 중요한 음식을 믿을 수 있는 국산 농산물을 공동 구매해서 직접 전통방식으로 만들고 무공해 청정자연 속에서 숙성시켜 필요할 때마다 직접 꺼내먹듯이 주문해 먹는 개념인 듯했다. 흔치않은 방식이라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

▲ 오래된 수양버들과 바위틈에서 맑은 샘이 나온다. 이 물로 전통발효식품을 만들고 있다.
◆바로 여기다! = “우린 지금 ‘도리촌 영농조합법인’과 ‘다문화 영농조합법인’ 두 개를 운영하고 있다. 5년 전에 타인의 법인을 인수했고, 허가나 건축 등 절차에 지금까지 4년 걸렸다. 건물은 2017년 12월 31일에 준공했다. 회원모집은 9월부터 4개월 정도 했다. 회원 300명이 모였고, 꾸준히 늘고 있다. 지금 회원 개인 보관 장독이 300개고 영농조합분이 150개 있다. 향후 5년간 1만개가 목표다. 그러면 회원은 1만명이지만 그들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방문이 이어질 거고, 체험관광 등 6차산업화까지 되면 부수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강덕중 이사의 말이다.

최근 귀농귀촌하는 이들과 원주민 간의 알력이나 갈등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원래 이 고장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들어와 개발하고 사업을 벌이는 데 문제는 없었을까? 강은숙 감사는 이에 대해 “우리가 활력 떨어진 시골마을에 들어와 사업을 하게 되니 마을에도 여러 가지로 득이 되고 실제로 주민들도 호감을 표하고 있다. 앞으로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지역주민도 채용하게 될 것이므로 함양군 관광이나 홍보,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올해 메주 만들려고 함양농협에서 콩 1500kg을 구매했다. 이왕이면 로컬 푸드를 써서 지역 농업에 기여하는 게 좋지 않나? 앞으론 콩 같은 필수원료들을 지역주민들과 계약재배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창원과 부산 등 도시에 기반이 있는 이들이 이곳엔 어떻게 오게 됐을까? 강은숙 감사는 “좋은 장소 찾아 몇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다. 특히 물이 좋고 전신주가 없다든지 하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이곳을 보고는 ‘바로 여기다!’ 했다”고 정착 계기를 소개했다. 더불어 그는 좋은 이야깃거리도 있다며 소개한다.

“위쪽 산에 보면 오래된 수양버들과 거대한 바위 사이에서 약수가 솟아나온다. 동네주민들이 매일 와서 떠가시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이 물 참 좋아. 떠다놓고 2~3달 지나도 이끼가 안 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두고 먹어보니 정말 좋은 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린 이곳에 물을 보고 들어왔다. 장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물이 좋지 않으면 좋은 장이 될 수 없지 않나? 수질검사도 이미 다해놨다.”

▲ 장독마다 소유자의 이름과 담은 날짜가 적혀 있다.
◆꿈과 과제 = 자연조건이 뛰어난 건 알겠는데, 한적한 시골마을에 규모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구상일까? 강은숙 감사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겠다. 자연은 한 번 망치면 돌이키기 어렵다. 지금 이 자리는 오는 사람마다 감탄한다. 풍수를 볼 줄 몰라도 그냥 좋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 주위로 복숭아 같은 유실수를 3000그루쯤 심을 예정이다. 다음해부터 복사꽃 가득한 무릉도원이 펼쳐질 걸 생각하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그렇게 사계절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테마를 개발할 생각”이라며 미소를 짓는다.

이어 그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그린다. “앞으로 추진해나갈 큰 그림이 있다.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살려야 한다. 건강은 면역싸움이다. 슬로푸드는 내 몸의 면역을 기른다. ‘현대의학으로 못 고치는 병, 면역 길러 고치자.’ 이런 모토다. 아이들 아토피에 좋은 것 등 건강 먹거리도 개발해나가겠다. 앞으로 오행식이라든지 슬로라이프(Slow Life) 교육도 해보고 싶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결국 수천 년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똘똘 뭉친 된장, 간장, 고추장 알리고 싶어서 하는 거다.”

강덕중 이사는 이날 눈길에 차를 몰고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실어날랐다. 깊이가 어른 키만한 하천을 따라 나있는 구불구불 협소한 길에 눈이 쌓여 얼어서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길 옆 돌담에 차를 긁어버렸다. 비좁고 위험한 진입도로와 하천은 이곳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관건이 될 듯하다. 강 이사는 “이 부분은 앞으로 함양군이 협조해주면 좋겠다. 그것만 된다면 영리 목적도 벗어나고 싶다. 올 6월쯤 예비사회적기업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 될 지역의 명소가 될 것이므로 지자체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 중에 여수에서 왔다는 서정기 씨가 끼어든다. “관광명소 여수가 될 때까지 20년 걸렸다. 처음엔 오동도 한 가지뿐이었다. 이를 먼저 향일암과 연계시키기 시작했고, 이어서 여수엑스포와 ‘밤바다’가 시너지효과를 내니 1천만 관광객 시대가 열린 게다. 그에 비해 여기는 지리산 길목이라 지리산 생태와 생약체험 등과 연계해 발전 가능성이 크다. 지리산 등반하는 중간기착지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관광벨트를 연계시키면 앞으로 전국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지리산 기 받고 업장 소멸되고 힐링하는 함양의 명소’로 컨셉을 잡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박철기자

▲ 건물 안에서 메주를 말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