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요리사의 열정
콩나물 요리사의 열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2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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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석/한국국제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
백발아래 반짝이는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허공을 조물락 조물락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청이를 찾는 심봉사 같기도 하고, 꼬챙이로 이놈 저놈하며 삿대질을 하는 모습이 성난 놀부 같기도 하나, 넓게 벌어진 어깨로 퍼득퍼득 날갯짓을 하다 바이올린에 매달려 창공을 가르고 첼로에 업혀 땅을 기는 걸 보니 그는 분명 악보의 콩나물을 버무리는 최고급 요리사 잘츠부르크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다.

검고 두꺼운 책으로 만났던 그를 오스트리아에서 만나다니! 저택에 새겨진 그의 이름 앞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뱅글뱅글 돌아 정원에 이르니 카라얀은 몹시 작은 슬림피트 청동 옷을 입고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괴팍하고 완벽한 성격에 단원들이 힘들어 하고 일을 주는 이들도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의 실력과 성실함에 무릎을 꿇고 여러 연주회나 오페라에 총감독을 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많은 녹음과 연주를 위해 그에겐 초고속 비행기와 지칠 줄 모르는 로봇 같은 연주자들이 필요했지만 갈수록 아쉬움만 쌓여가고 세월은 지휘봉 대신 커다란 지팡이를 안겨 주었다. 하얀 파뿌리 머리에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음악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정시 발표에 달고 쓴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등록을 유도하는 전화에 온 집안이 정신이 없고, 만 갈래 마음 길을 가까스로 정하고 나니 등록금 고지서와 기숙사비, 기성회비 등에 바들바들 손이 떨린다. 추가 합격에 목을 매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끌려온 오리엔테이션은 학부모와 신입생 맘 굳히기 작전에 여념이 없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애기들 엉덩이에 쥐가 날까 싶어 드럼에 일렉기타로 흥을 돋워보지만 20살 새내기의 무거운 어깨를 달래주기엔 역부족이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아이들의 대학 얘기들을 듣고 있자니 몇 되 들이킨 막걸리 트림이 미안하고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덮기가 부끄러워 달빛 그늘 아래 멍하니 앉아 한 모금 연기를 내품어 본다. 좋은 학교 못가서 미안하고 장학금을 못 타서 더 미안하고 책값, 학생회비는 차마 말 못하겠단다. 아직은 혼자 일어설 수 없어서 장애 없는 장애우가 된 우리 새내기들이다. 기자재 구입비와 실습비를 줄여 깎아준 등록금은 간에 기별도 안 오고 출장비와 인건비를 줄여 늘려준 기타 등등 장학금은 남의 호주머니 일인지라 벌써부터 원룸 월세와 2학기 등록금 대출이 걱정이고 아르바이트 일정과 강의시간표 맞추기는 꼬마아이 퍼즐놀이보다 힘겹구나.

아이들아 힘을 내자! 짜장면 곱빼기 철가방을 든 네 모습이 부끄럽지 않고 겨드랑이 땀내 젖은 신문이 장미보다 향기롭다. 포장마차 오뎅국물 간을 눈물로 보고 어깨에 짊어진 벽돌이 한없이 원망스러울지라도 절망하지 말자. 대학의 파노라마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고 캠퍼스를 향한 나의 외침이 뭉크의 ‘절규’보다 더 할지라도 우리 절망하지 말자. 해남의 대표시인 민다선은 “농부가 정성을 다한 논과 정성을 다하지 않은 논은 가을에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 어느 대학에 가 있든 여러분은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고 이미 대학열차는 출발했으니 졸업할 때 큰 수확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보자. 학과의 교수님과 발맞추어 내가 가진 잠재력과 장점들을 열정적으로 연주해 보자. 지역을 넘어 세월을 넘어 세상은 정직하고 올바르고 성실한 사람을 버려두지 않음을 반드시 기억하자.

고독과 고배를 마셔가며 완벽하고 멋진 지휘로나마 거장들의 위대함과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했을까, 단순한 음악성의 발산이었을까. 비록 외롭게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오스트리아는 열정에 넘친 카라얀을 기억하고 싶었고 나도 그를 기억하고 싶다. 모차르트 생가 맞은편에 카라얀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새내기들도 4년 뒤에 내가 서 있을 그 자리에 당당하고 떳떳한 이유를 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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