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간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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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21 18: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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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인간도서관


지금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저런 불편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이 70인데도 아직 동네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노년층이 시국(時局)을 평하는 소리에는 걱정근심과 우려들로 가득하다. 옛날로 치면 안방에서 그저 말만하여도 그 역할을 다하였고, 말을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그저 안방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여도 그 존재의미는 지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몸소 괭이로써 물꼬를 터고, 낫을 거머쥐고 나락을 베어도 존경은커녕 아예 성가신 존재로 취급받는 세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들 등에 엎여서 깊은 산골로 ‘고려장’되려가는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꺾어서 산골 길가에 던져 놓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들이 어두운 밤길을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세세하게 챙겨주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현재의 여러 돌아가는 일들에 대하여 이러 저러한 한숨 섞인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예컨대 나라살림은 내팽개치고 인기를 끌기위한 퍼주기 선심정책, 최저임금제로 인한 영세업소의 경영난, 이로 인한 실질적 일자리 상실, 북한의 환심을 사기위한 안달, 국제관계에서의 우리나라 위상의 등등으로 나라에 대한 근심걱정이 끝이 없다.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찬 이들의 결론은 이래저래 ‘장똘뱅이’들만 죽어난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진심어린 우국충정(憂國衷情)은 갸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적 처지는 누구하나 이들의 말에 귀 기울어 줄만큼 이름난 입지는 아니다. 오히려 나라와 사회의 일보다는 스스로의 먹고사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하여야 할 서글픈 처지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대화는 그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실없는 소리로 허공에 헛 날릴 따름이다.

이들의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나라에 대한 우국충정, 나라의 미래에 대하여 근심 걱정하는 모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중국 농민공들의 자부심과 유사하다. 이들 농민공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들어와 밥값과 생활비를 아끼고, 공짜 와이폰 존에서 가까스레 통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수입으로는 7대에 걸쳐서도 살 수 없는 아주 높은 가격의 집을 짓고 있는데 대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들어가 생활할 수 없는 도시를 건축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사실자체에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론이 보도한다.

우리의 70대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스스로 먹고 살기위하여 평생을 다하였고, 결과적으로는 평생을 바쳐서 대한민국의 국가발전과 성장에 기여한 것이 되었지만, 막상 현재 스스로 누리고 있는 경제적 처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고, 권력의 언저리에는 결코 가까이 가보지 못하였고, 사회적 명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이 나이든 청년들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우환의식은 대단하다.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룩한 경제적 권력적 사회적 과실(果實)은 배타적 권력자와 탐욕스런 재벌이 차지하고, 권력자들과 재벌들이 견고하게 구축하여 놓은 권력·사회체제 속으로 이들의 자녀들이 들어가기에는 매우 어렵다. 오불리스 노불리즈 정신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탐욕스런 권력자와 재벌의 만행과 횡포에 대하여 비판하고 저항을 하는 목소리들에 대하여 ‘빨갱이 짓’이라고 단호하게 분개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호 모순된 점들이 바로 이들을 의미 있게 보관하여야 할 ‘인간도서관’으로서의 가치라고 하겠다. 이들이 일제 말기부터 21세기까지, 가장 잔악한 일제 강압적 독재로부터 문재인 정권을 태동시킨 가장 자유스런 민주까지, 보리등겨 개떡 한 조각에 허덕대던 지독한 가난에서 영양과잉으로 걱정해야 할 현재까지, 지게로부터 첨단기기에 이르기까지, 단일한 가치관에서 상호 모순된 다양한 가치충돌까지의 모든 세월을 골고루 경험하고 간직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200 여 년 전의 선진국 모습에서 현재까지의 모습을 골고루 경험한 세대로서 전 세계에서도 찾기 어려운 거의 유일한 세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들의 개인적 일상을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들이 죽으면 이 거대한 모순 속에서 발전하고 성장한 생생한 삶의 현장을 간직한 장엄한 도서관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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