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칭찬(3)
아침을 열며-칭찬(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1.21 18: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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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칭찬(3)


뜬금없지만 졸시 한편을 소개한다.

조계산 고찰/ 선암사 뒤켠/ 샛노란 은행나무숲은 선경이었네// 산들바람에도 우수수 잎 지는 가을/ 햇살은 새소리와 한데 어울려/ 숲속의 산책을 즐기고 있고/ 구름을 따라/ 모퉁이 돌아/ 잎들이 살포시 내려앉는 곳/ 이끼를 짙게 입은 부도들 몇은/ 해탈로 가던 고승들의 먼 이야기를/ 말없는 말로 전하고 있네// 사바를 넘은/ 아롱진 세월/ 낙엽처럼 또 한겹 쌓이고 있네 〈수채화 - 가을 선암사〉《푸른 시간들》

전남 순천의 선암사는 워낙 유명한 절이라 다녀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곳의 해우소와 홍매화는 입구의 승선교와 더불어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 이 천년 고찰에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바로 그 뒤켠에 있는 숲이다. 은행나무 숲이다.

그 숲의 존재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상태에서 나는 그것을 만났다. 그저 만남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우연한 발걸음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창원대 철학과에는 ‘철학기행’이라고 하는 제법 오래된 행사랄까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수년전 선암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여장을 풀고 저녁공양을 기다리는 사이 슬그머니 혼자 빠져나와 절구경을 하다가 호기심에 이끌려 뒷산 쪽으로 난 호젓한 오솔길을 어슬렁 올라갔다. 오랜만에 귀여운 다람쥐도 한 마리 만났다. 이 녀석을 뒤따라가다가 모퉁이를 하나 돌았는데 우와~ 거기 그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온통 샛노랑이었다. 산 전체가. 때마침 산들바람이 불어 우수수 낙엽이 춤을 추며 떨어졌다. 이미 떨어져 쌓인 것도 제법 있어 바닥도 온통 노랑이었다. 선경! 그야말로 선경이었다. 그런 아름다움은 처음이었다. 물론 진해 장복산의 벚꽃 숲은 더욱 화려한 아름다움이었지만 이건 종류가 전혀 다른 정제된 아름다움을 선사해줬다. 한참을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내려왔지만 흥분이 가라않지 않아 동료 교수님들에게 막 자랑을 했더니 “참,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하며 놀리듯 웃기도 했다.

지금도 가을만 되면, 그리고 은행나무만 보면 그 선암사 뒤편의 은행나무 숲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나라에 그런 숲이 있다는 것을 독일의 저 슈바르츠발트(검은 숲)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언제 어떻게 그 숲이 조성되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잘 알지 못한다. 자생 숲은 아닐 테니까 아마 언젠가 누군가가 거기에 첫 한 그루를 심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그 누군가를 한없이 칭찬하고 싶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그 숲의 존재를 심은 것이니까.

한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강원도 홍천에도 그런 은행나무 숲이 있다고 들었다. 아내의 건강을 위해 한 개인이 30년간이나 그것을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인가! 유감스럽게도 그곳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정년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 있다.

아마 어딘가에는 자작나무 숲도 있을 것이고 단풍나무 숲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정년 후 세상을 뜨기 전까지 가능만 하다면 느티나무 숲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이 실현된다면 훗날 나같은 시인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맑은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줄 것이고 그리고 아마 나를 이 세상에 내보낸 신께서도 흐뭇하게 웃으며 칭찬해주실 것이다.

그런데, 벚꽃 명소인 서울 여의도에 벚나무 숲을 조성하자는 시장이나 구청장은 왜 없는 것일까. 그런 미학 있는 정치인들을 나는 오늘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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