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겨보는 3·1정신
되새겨보는 3·1정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2.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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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수/진주보훈지청 서무담당
올해 3월 1일은 3·1절(三一節) 제93주년이 되는 날이다. 3·1절은 3·1운동의 숭고한 자주 독립정신을 기념하는 위하여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제정·공포된 우리나라 4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중의 하나이다.

약 100여 년 전 1905년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맺은 을사늑약과 1910년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 이후로 우리나라는 일본 식민지의 지배 하에서 모두가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와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원칙’은 세계의 식민지 약소민족에게 독립에의 의지를 불태워 주었다.

그런 우리 민족의 의지는 2·8독립선언서와 고종황제의 암살설로 촉발되었고, 고종확제의 장례 기간인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울려 퍼지면서 역사적인 3·1운동이 시작되었다.

비록 화성 제암리 학살 등을 포함한  3·1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으로 3ㆍ1운동은 실패에 그쳤지만, 그 결과 항일독립운동을 체계화ㆍ조직화ㆍ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라 안팎에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줘 중국의 5ㆍ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ㆍ불복종 운동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3·1운동은 전국 독립만세 시위운동 횟수는 1542회, 참여한 인원만 20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운동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가 2000만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총 인구의 무려 10%가 넘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이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는 우리나라의 크나큰 자랑이다.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은 9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승되어 전 국토가 폐허가 되어버린 6·25전쟁 이후에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 2011년 기준 GDP(국내총생산)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하여 세계에서 6번째로 스포츠 그랜드슬램(하·동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을 달성한 나라가 되었다.

이처럼 이렇게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한 우리 민족의 핏속에서는 숭고한 3·1운동의 정신이 흐르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3·1절 관련 학생인식에 관한 조사 결과 무려 40%가 되는 학생들이 3·1절의 의미를 모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 민족의 애국심과 자긍심으로 똘똘 뭉쳤던 그날이 우리 삶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천안 독립기념관 일본군 위안부 전시 코너에 보면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자주독립의 정신과 자유평등·세계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분연히 일어선 3·1운동의 그 정신을 잊는다면 일제 강점하의 그 치욕과 고통의 역사는 후대에 되풀이 될 것이라는 말과 같다.

 올해 3·1절에는 진주의 3·1절 기념 건강달리기대회, 거창의 3·1민속문화제와 그날의 함성을 재현하는 합천 삼가장터 재현행사 등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거행된다. 한번쯤 이런 기념행사에 동참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 기념행사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들의 그 날의 숭고한 애국혼을 되새겨보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껴볼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3월 1일 아침에는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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