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겁(劫) 이전의 소식을 알려고 하지마라
칼럼-겁(劫) 이전의 소식을 알려고 하지마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2.05 18:2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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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겁(劫) 이전의 소식을 알려고 하지마라


언젠가 영국 신문에 나라 끝에서 수도인 런던까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모가 실렸다고 한다. 비행기, 기차, 자전거, 걷기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1등으로 당선된 답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인생이란 고해를 가장 빠르고 편안하게 건너갈 수 있는 방법은 ‘좋은 도반(道伴)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인생 최고의 행운이란 바로 그런 도반과 만나는 일일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도반이 몇이 있다. 행운이다. 한 생을 마친 뒤 남는 것은 남에게 베풀었던 선행뿐이라고 한다. 악착스럽게 모은 돈이나 잡다한 재물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남모르게 했던 적선이나 따뜻한 격려의 말, 그리고 한 줄의 좋은 글은 사람들 가슴에 오래 남아 향기를 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면서 한 줄의 글귀라도 다듬고 또 다듬어 본다.

세상 누가 겁(劫) 이전의 소식을 알려 하는가? 달은 지고 또 뜨지만 산새는 오지 않고 찬바람만 때때로 선불장 문 두드리네! ‘산은 늘 푸르고 물은 늘 흐른다.’ 라고 어느 출가자는 읊었다. 푸른 산은 어제의 산이 아니고, 흐르는 물 또한 어제의 그 물이 아니거늘 우리의 생각은 어제의 것에 집착하고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시작도 지금 이 순간이며 인생의 중간도 지금 이 순간이며 인생의 마지막도 또한 지금 이 순간이다. 순간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평생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하는 인생 그 자체가 아닌가! 오늘 하루 후회보다 만족하는 하루, 슬픔보다 기쁨이 넘치는 하루, 나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하루, 남을 헐뜯기보다 상대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하루, 역행하기보다 흘러가는 물처럼 순리적인 하루, 게으르기보다 부지런한 하루, 용서와 양보의 하루, 분노보다 연민의 하루, 더 낮추고 더 낮추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물의 흐름이 아무리 거세도 수면에 비친 달까지 흘려보내지는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물은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상사이며 달은 자신의 마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세상의 주인은 자신의 마음이다. 주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지, 세상이 주인을 다스리는 법은 없다. 깊은 강물은 조용히 흐르고, 작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고 흐르듯, 가득 한 것은 아주 조용하지만, 모자라는 것은 요란하게 소리를 많이 낸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갔더니 너무나 시끄럽다. 밥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정신이 없다. 생겨나는 것은 태어난다고 하고, 사라지는 것을 죽는다고 하여 기뻐하고 슬퍼한다. 또 연인들은 만나고 헤어지면서 사랑이 변했다고 하며 눈물 흘린다. 그래서 이러한 변화를 무상(無常)이라고 하니, 인생 허무를 이야기하며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빠진다.

아름다운 신이 한밤중에 부처님을 찾아와 최고의 행복이 무엇인지 물었다. ‘어리석은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고 어진 이와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분수에 맞게 살면서 일찍이 공덕을 쌓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닦아 바른 서원을 하는 것, 지식과 기술을 익혀 말솜씨가 뛰어나고 몸을 잘 다스리는 것,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때로는 진리의 가르침을 듣는 것, 인내하고 온화하게 말하고 수행자들을 두루 만나 진리의 가르침을 받는 것, 수행하며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선정에 드는 것, 이것이 위없는 행복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빗물을 받으려고 한다. 흘러가는 물에는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수 없다.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듯, 마음이 고요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다. ‘생의 첫날인 것처럼 기뻐하고,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아라. 기뻐서 춤출 일도 있었고, 아픔에 목이 매여 눈물 흘린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다 지나간 일들이 아닌가. 아쉬워하거나 땅을 치며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 여기에 없다. 그래서 겁(劫) 이전의 소식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되새겨 봤으면 한다.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이틀 전 입춘(立春)이 지났다. 봄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요 만사형통(萬事亨通)들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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