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한글 표기법
아침을 열며-한글 표기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2.25 18:0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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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한글 표기법



예전에 펴낸 자기 책을 다시 읽다보면 가금씩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여러 번 교정을 보았는데도 오자나 탈자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곳이 눈에 띄는 것이다. 재판을 다시 찍는다면 고쳐서 바로잡을 기회가 있겠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인문학 책을 다시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건 불편하지만 자신의 부주의 내지 실수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자기 실수가 아닌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자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다. 아무도 그렇게 발음하지 않는데, 표기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편집진이 그렇게 고쳐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마음의 불편이 오래 간다. 특히 나중에 ‘짜장면’이 복권되었을 때는 마음의 불편이 더욱 커진다.

‘랍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원고에 분명히 ‘랍스터’라고 적었는데, 편집부에서 ‘로브스터’라고 고쳐버린 것이다. ‘외국어 표기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이것도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복권되었지만 책에는 영구히 저 이상한 ‘로브스터’가 이빨에 낀 고춧가루처럼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관련된 국어학자들께 불만이 많다. 오렌지를 굳이 오륀쥐라고 표기하자는 것은 지나치지만 어느 정도는 현지 발음에 충실하게, 그리고 현실 발음에 충실하게 표기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몇 가지 의견을 생각나는 대로 제시해본다.

1. ‘희망’: 아무도 이렇게 발음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히망’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다.

2. ‘혜택’: 이것 역시 아무도 이렇게 발음하지 않는다. 이것도 ‘헤택’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다.(지금 같은 디지털지대에 입력의 경제원칙을 생각하더라도 한 획이라도 줄이는 것이 더 낫다고 나는 본다. 처음엔 이상하겠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3. 영어의 ‘생큐’ 등: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른다지만 그런 된소리 알레르기 반응은 좀 이상하다. 정확히 일치하는 한글 자음이 없어 어쩔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발음하는 대로 ‘땡큐’가 차라리 낫다. ‘싱크think’도 ‘띵크’가 낫다. sink와도 구별이 된다.

4. 독일어의 ‘바흐’ 등: 독일어의 ch는 앞에 오는 모음에 따라 발음이 달라진다는 게 독어문법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히 리베 디히’의 ‘이히Ich’도 그런 경우다. Bach는 예전에 표기하던 대로 ‘바하’가 맞다. ‘고흐’도 ‘고호’가 원음에 가깝다. u 다음에 ch가 오는 Buch라면 ‘부흐’가 맞다.

5. 프랑스어의 ‘센’ 등: 언젠가부터 센느강이 센강이 되고 소르본느대학이 소르본대학이 되어 있다. 현지발음을 백번 들어보아도 센느가 맞고 소르본느가 맞다. 시몬도 시몬느로 복원되어야 한다. 파리도 ‘빠리’가 낫고 피에르도 ‘삐에르’가 낫다. 그리스어의 p도 모두 된소리로 발음된다. 국어학자들이 된소리 알레르기에서 속히 벗어나기를 나는 바라마지 않는다.

6. 일본어의 ‘다코야키’ 등: ‘たこ’는 다코가 아니라 ‘타코’가 맞다. 로마자로도 ‘tako’로 표기된다. 일본어의 ‘か’행과 ‘た’행은 ‘가’ ‘다’가 아니라 ‘카’ ‘타’로 표기해서 ‘が’ ‘だ’와 구별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きんぎん(金銀)’처럼 금과 은의 구별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한국식 표기가 일본 현지에서 들으면 엄청 촌스럽게 들린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적어보았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관련기관에서 이상한 기준을 고집하지 말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표기법을 개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외국어나 외래어도 엄연한 우리의 언어생활의 한 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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