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미-투 운동과 우리들의 민낯
진주성-미-투 운동과 우리들의 민낯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3.15 18: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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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미-투 운동과 우리들의 민낯

이제는 말하고 싶다. 이제는 말해야겠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짓밟힌 상처의 몸부림이고 감춰진 울분의 분출이며 원한 맺힌 분노의 절규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나도 말한다. 나도. 미-투. 세상을 들끓게 하고 사회를 뒤집어 놓은 우리사회의 감춰진 부끄러움이다. 숨겨야만 했던 씻을 수 없는 상처였고 감춰야만 했던 치욕이었고 들내고 싶지 않았던 고통이었다. 왜 꼭꼭 깊은 곳으로 감추어야만 했으며 못 견디게 괴로워도 참아야만 했던가. 이들에게 피맺힌 원한을 안겨준 이 사회는 무엇을 하였으며 이들에게 입막음의 억압과 묵시적인 관능의 세태는 누가 만들었고 인면수심으로 민낯을 가린 탈바가지는 누구의 소작인가. 정계 재계 학계는 물론이고 문예계를 비롯한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이 성한 곳이 없다.

마음의 은장도는 언제나 칼끝이 안으로 향하기만 했던 편협한 사고였으며 은밀하게 덮어야만했던 왜곡된 성 인식은 정복과 속박을 내포한 이기적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경시되었고 품위와 명예의 멍에를 덧씌워 본인상실의 족쇄로 살아가게 했던 굴곡진 정서는 언제나 편향된 성교육의 억누름이었다. 언제나 음흉한 계략은 권력이었고 부정한 향락은 상대적지배자의 권력이었다. 성폭력의 70%가 직장 상사로부터의 받았다니 탄식소리가 더욱 드높다. 직위를 앞세운 막강한 권력 앞에 어떻게 거부하고 어떻게 저항할 것이며 전부를 걸고 전력을 다하여 공들여 쌓아온 결과물 앞에서 상대적 우위의 위력과 횡포를 어떻게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일생을 걸어야 할 직장이고 가족의 미래까지도 담보로 맡긴 직장에서 직위에 의한 권력의 힘을 거절하며 저항하기에는 다가 올 내일의 현실이 너무도 암담하기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며 보복과 후한의 두려움과 주변의 시선을 어떻게 뒷감당해야 할지 가늠도 할 수 없어 소리 없는 통곡만 하였을 것이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원초적 본능의 욕구가 아니라 가상적 희열의 추구에 매몰되어 정제되지 못한 야만의 폭력이다. 절제에 무기력한 이 사회가 책임을 저야 하고 이기적인 욕망충족에 현혹되어 도덕성을 상실시킨 우리 모두가 책임을 저야 할 절박한 현실이다. 배상의 책임도 보상의 책임도 이 사회가 저야 한다. 양지의 그림자가 더 짙음을 직시하고 위선에 가려진 약자의 신음소리에 귀 기우려야 한다. 이제는 시원스럽게 말하라. 그러고는 원한도 접고 증오도 버리고 훨훨 털고 새로운 비상을 하라. 우리 모두는 따뜻한 가슴으로 응원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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