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기게 내리던 비가 그쳐 모처럼 농장을 다녀왔다. 주말농장 경력 올해로 20년차인 우리 부부는 몇 해 전 조그마한 땅을 사서 배와 매실을 키우고 있다. 봄에 과수 농사를 시작하려면 거름부터 주어야 하는데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나선 길이었다. 다음 날 퇴비를 받기로 해서 겨우내 전정하고 버려두었던 나뭇가지들을 한 곳으로 치우고 퇴비 쌓을 자리를 정리하였다.
해빙기여서 땅이 물렁한데 비까지 내려 발 딛는 곳마다 땅이 푹푹 꺼진다. 덕분에 한걸음 딛기도 힘이 드는데 며칠 뒤 또 비가 온다니 마음과는 달리 일에 속도가 붙지를 않는다. 요새는 비가 와도 너무 자주 온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삼사일은 보통이고 이번 비는 5일이나 내렸다. 장마철도 아닌데. 예전엔 봄 가뭄 때문에 농사짓기가 힘들다는 뉴스가 자주 나왔었는데 늘 비오는 날씨가 되고 보니 올 한해 농사 비 때문에 제대로 될 지 걱정이다.
땅을 구입하고 몇 해는 뭘 어떻게 키워야할 지 몰라서 있는 배나무에 달리는 열매만 쳐다보았다. 꽃도 조금 피고 몇 개 안 달린 열매도 하나 둘 벌레에게 먹히고 떨어지더니 결국엔 여름 전에 다 떨어져 배 구경도 못하고 첫 농사를 끝냈었다. 둘째 해는 직접 신문지로 배봉지 만들어 씌웠더니 비만 오면 봉지가 젖어 찢어져서 벌레들에게 밥상을 준 꼴이 되었다. 그 다음 해가 되어서야 약도 치고 농협에서 파는 봉지를 사서 둘이서 목이 아프도록 배나무를 쳐다보며 일주일 내내 배봉지를 씌우는 작업을 해 가을에 제법 배 수확을 하였다.
처음 주말 농장을 시작하면서 채소재배에 관련된 책을 하나 샀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그 책을 보면서 농사를 지었다. 그 때는 작물을 심을 때와 키우는 방법만 알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포기배추 키우기가 어려웠다. 겉모습은 그럴 듯한데 속을 갈라보면 껍데기뿐이고 속이 차질 않았다.
그러다가 배추 키우는 방법을 배워 재작년에는 김장의 반을 보태었다. 내가 키운 배추가 작아도 더 맛있다고 다들 좋아하여 작년에는 배추를 많이도 심었는데 10월 접어들면서 매일 비가 와 배추가 물러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놔두면 다 녹아내릴 것 같아 한 달이나 빨리 김장을 하였는데 이번 김장은 물이 많아 맛이 영 못하다. 모처럼 해가 나 오늘도 밭에 일하러 간다. 이제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말고 비가 많이 와도 피해를 입지 않을 방법은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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