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꽃피는 속도
시론-꽃피는 속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02 18: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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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꽃피는 속도


시운이 꽃피는 시운이니 꽃망울 터지는 속도가 여간 아니다. 아침에 맺혔던 꽃망울이 한 낮에 터져 버린다. 춘신전령(春信傳令)이 어디 꽃망울뿐이겠는가 마는 보기 좋고 향내 좋으니 모두들 좋아라한다. 여기저기 울긋불긋 아롱져 춘향(春香)조차 만발하니 마음 울렁거림이 어디 청춘남녀들 뿐이겠는가. 어김없이 봄은 온다. 그리고 영원한 봄이 없듯 항구적 겨울도 없다. 겨울가고 봄 오는 이런 변화의 반복이 우주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걱정한다. 예전엔 봄도 길고 가을도 길었는데, 요즘엔 봄도 짧고 가을도 짧다고들 아쉬워한다. 어떤 이들은 괴기스런 앞날을 말하기도 한다. 봄이 짧으니 꽃망울 터지는 속도도 예사롭지 않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0~2017년 봄 지속 기간은 평균 77.4일로 평균 92.1일이던 1970년대(1973~1979년)와 비교해 보름가량 줄었다(동아일보3,5)한다. 봄과 가을의 완충기간이 짧아지니 사람들은 이제 계절은 겨울과 여름뿐이라고들 한다. 서서히 봄이 무르익을 때 사람들의 심성도 서서히 착실하게 자라나고, 서서히 가을이 짙어질 때 사람의 행실도 충실하게 익어간다. 하나 봄의 속도가 짧고 빠르니 심성이 쉬 물러서 야물지 못하고, 가을이 찰나니 그 행실의 결과가 향기롭고 달콤하지 못하다는 말씀도 있다. 동양의 관점으로 봄기운의 양기가 충실하여야 여름철 무르익음이 왕성하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가을날’에서 말했듯 무성하게 위대한 여름이라야 남은 과일도 천천히 무르익어 갈 수 있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다. 과일은 천천히 쉬면서 익어간다.

완충(緩衝)이 없거나 급하면 사람의 성향은 급하고 옹졸해진다. 그리하여 쉬 좌절하고 쉬 분개한다. 쉬 공격하고 쉬 자진한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넉넉하게 다른 이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대인풍모의 대 정치가(政治家)는 만나기 어렵고 이해득실에만 민감한 정치꾼들만 득실댄다. 보다 큰 이익을 추구하여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는 지혜로운 대상(大商)은 찾아보기 힘들고 옛날 간장종기만한 제 밥그릇만 꼭 움켜잡고 바들바들 떨며 밥 한술 건네지 못하는 째째한 장돌뱅이들만 판을 친다. 물론 위대한 성현은 하찮은 미물의 아픔도 자기 아픔처럼 통절해하며, 위대한 상인은 티끌만한 푼돈도 태산처럼 귀중하게 여기는 미덕이 있지만, 그런 좀스런 모습이 내심으로 추구하는 바는 보다 많은 이들의 복(福)됨이다. 지금은 나를 비롯하여 좀스런 모리배들만 무리지어 몰려다닌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람 탓이 아니고 시운 탓이다. 봄이 왔으나 봄이 아닌 것 또한 시운 탓이니 이를 너무 나무라지 말자. 기토(己土)의 시운다음엔 풍요로운 경금(庚金)의 시운이 도래할지니 꾀죄죄한 시운의 몰골에 너무 가슴아파하지 말자.

하여 봄이니 봄이 참된 봄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예지로 봄을 봄답게 맞이하여 흘려보내자. 급히 먹는 밥에 체하고, 급히 흐르는 봄바람에 결실이 알차지 못할까 심히 염려되니 쏜살처럼 흐르고 있는 봄날, 환상적인 아지랑이만 몽롱하게 바라보고 있지 말자. 어떻든 이 봄에 알찬 씨앗을 뿌려보자. 지금 평양에서 ‘봄이 온다’의 합동공연이 열리고 있다.

겉으로 온 봄, 속으로 내실 있게 다지자.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위로하며 서로 베풀 수 있는 넉넉한 봄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꽃이 피면 지듯이 나는 깨달았네♪ 당신은 세상에서 조그만 나그네∽” 꽃은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벌 나비는 춤을 추고, 새들은 노래 부른다. 햇살은 축복하고 달님은 사랑한다.

하여 이 좋은 춘삼월에 가슴 닫고 졸음에 겨운 가슴앓이로 괴로워 말고 탁 털고 일어나 꽃 잔치를 즐기자. 비록 혹독했던 지난겨울 후벼 패인 쓰라림이 있다하더라도 통 크게 툴툴 털며 자신을 위로하자.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위로할 것인가? 한걸음 더 나아가 내게 잊히지 않는 아픔을 새긴 이들도 용서하자. 인(仁)이란 서(恕)이니 내가 나를 용서하듯 다른 이들도 사랑하자. 신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어찌 쉬 가실 수 있겠냐마는 곪은 가슴 안고 가면 쓰리기만 할 뿐 덕 될 것 없다.

이 찬란한 봄날 우리 모두 세찬 햇살 속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숙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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