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문산 성당 김명제 신부
진주성-문산 성당 김명제 신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18 18: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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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문산 성당 김명제 신부


서기 1874년 출생한 김명제(金命濟)신부의 세례명은 베드로이며 1908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08년 진주시 문산읍 성당에 부임해 주임신부로 재임 중 성당 토지를 측량하기 위해 찾아 온 일제 측량사를 거센 항의로 도망시킬 정도로 담력이 있었다.

김명제 신부는 하동. 사천. 고성을 위시하여 전남지역 까지 37개 공소를 순회하며 사목활동을 했다.

문산 성당 부설 배명학교(심상과 4년, 고등과 3년)를 설립한 공적이 있고 교장으로 봉사하신 분이다.

문산 성당에서 8년간 시무하다 황해도로 진출해 장연군 일대에서 항일 운동하던 윤예원 신부를 고발하는 서신을 주교에게 보낸 일로 비난을 받게 된다.

1928년 1월 초대 감목대리와 사리원 성당 제 4대 신부로서 성당 건축과 사제관. 수녀원을 건축하고 유치원을 신설해 경영토록 했다.

그가 설립한 명성학원이 4년제 여자보통학교로 발전케 되고 여성 교육과 문맹퇴치에 큰 공적을 세우게 된다.
1939년 서울의 명동성당의 관할 계성소학교 강당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 경성교구 연맹이 결성될 때 지역 인사로는 유일하게 이사로 선임되었다.

광복 후 원로 성직자 신부로 대우받다가 1961년 별세했다.

천주교 부산교구에서는 매년 12월 22일을 김명제 베드로 신부의 기일로 기리고 있다.

진주 문산 성당 내에 설립한 배명학교 졸업생 가운데 교육계, 경찰청, 언론계 등으로 진출한 제자들이 많았다고 문산성당 120년사에도 기재되었다.

황해도 지역으로 옮긴 다음에도 청소년들을 위해 문맹퇴치에 앞장서고 사제관, 수년관 등을 신축하고 유치원을 경영하면서 어린 생명들의 첫 수업을 통해 평생 영향을 끼치게 했으니 오직 성당을 위한 교육과 함께 일생을 통해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일에 힘쓴 일은 아름답고 큰 공적이 될 것이다.

황해도에서도 명성여자보통학교를 통해 여성 교육에 큰 공적을 달성했으니 일부 흠결이 나타나 있지만 큰 공적에 비하면 작은 실수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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