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헤세의 기도
아침을 열며-헤세의 기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4.22 18: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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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헤세의 기도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가 청춘이었을 때는 헤르만 헤세가 비틀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의 시 <안개 속에서>를 독일어로 외우는 친구가 있으면 그는 거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오랜만에 그의 시집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 중에 예전에는 몰랐던 <기도>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당신의 얼굴 앞에 서면/ 당신이 나를 조금도 살펴주지 않았다는 것을/ 달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고아처럼 적적히 거리를 헤매던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난과 견딜 수 없는 향수에 떨며/ 어린애처럼 당신의 손을 찾았을 때/ 당신이 나에게 오른손을 거절한/ 그 무섭고 어둡던 밤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린애가, 날마다 당신에게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던 시절을/ 나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보다 어머니에게 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가슴이 저며 왔다. 나 자신의 일부이기도 했던 그라 더욱 그랬다. “아, 그도 이렇게 힘들었구나…그도 이토록 간절했었구나…”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여기서 ‘당신’은 당연히 신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살펴주지 않는, 매몰차게 거절하는 신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달랠 수 없는 슬픔과 고아처럼 적적히 거리를 헤매는 것과 가난과 견딜 수 없는 향수와 무섭고 어두운 밤을 오롯이 그의 몫으로 껴안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헤세보다는 나은 신세인가? 우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누군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격하게 헤세에게 공감한다.

그는 신에게 거절당한 그 쓸쓸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은 모든 곳에 다 있을 수 없으므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의 속담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는 많은 경우 신의 역할을 대신 떠맡기도 한다. 뭐든 다 들어주니까.

그러나 우리들 속의 헤세는 이 시의 내용이, 이 간절한 기도가, 모든 어머니들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헤세들은 좀 너무 편의주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언뜻 스쳐갔다. 어머니들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고 누나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하고 ...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여자이고 인간인 것이다. 모든 아들들이 안고 있는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어머니의 것이기도 함을 그 아들들은 보통 잘 모른다. 그건 딸들도 마찬가지다.

헤세의 이 기도라는 시는 우리에게 신과 어머니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되새겨보게 한다. 삶의 힘겨움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기도로 인도한다. 그러나 신은 쉽게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 삶과 세상의 현상을 보면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신의 부재’는 부인하기 어려운 진실로 다가온다. 신은 인간들의 인간적인 기도에 답이 없다. 신은 도대체 어디로 출타하신 걸까. 그가 돌아와 답할 때까지 모든 것은 고스란히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그 모든 짐을 다 지울 수는 없다. 어머니도 일개 여자고 인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어머니들은 여전히 그 짐을 지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감사’가 필요한 것이다. 고마워하자, 모든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언급해준 헤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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