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허실실
시론-허허실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5.02 18:5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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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허허실실


전투용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이 아니다. 허술한 것 같아도 다 허술한 것이 아니다. 허술한 겉치장을 허술하게 보고 섣불리 덤벼들다간 박살나고 만다. 대단한 것 같아도 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대단한 허장성세의 위세를 보고 주눅이 들어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하여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허술하게 보이는 사람도 속이 꽉 찬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룩한 직함에 대단한 겉치레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도 까놓고 보면 허접한 사람들일 경우가 참으로 많다. 하여 허술한 귀인을 알아보지 못해 얻을 수 있는 보배들을 놓쳐버리게 되고, 허접한 사기꾼을 파악하지 못해 간직하고 있어야 할 재물들을 빼앗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세상사고, 이런 것들은 대개 사람들의 겉과 속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또한 시운의 착란으로 인해 생긴 현실 시공간에서의 사실과 진실의 불일치 때문이기도 하다. 본래 그런 것도 있고 일부로 그렇게 하는 것도 있다. 어떻든 사실과 진실을 올바로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겉과 속을 일부러 다르게 하는 것은 속임이고 인위다. 속임은 전쟁의 필수 속성이다. 손자병법 시계편에서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속이는 기술이라 하였다(兵者, 詭道也). 모든 것들을 능수능란하게 아주 잘하는 유능한 사람일수록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어수룩한 바보처럼 보여야하고, 매우 잘 사용하고 있는 것도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이것이 병술이다. 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바보가 남들을 바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어 병세편에 그렇게 적의 허점을 정확하게 간파하여 호시탐탐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천시와 지리가 딱 들어맞았을 때 순식간에 숫돌로 달걀을 예리하게 내리쳐 박살내어 버리듯 벼락같이 달려들어 적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장수는 전장(戰場)에서 허실(虛實)을 언제나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역시 허실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냉정하고 살벌한 실태가 전쟁터다. 나아가 세상이라는 넓은 싸움터의 현장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 겉모습과 속 내용을 잘 구별하여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그림을 보여주며 무섭지 않으냐고 묻는 어린왕자에게 모자를 보고 왜 무서워하느냐의 어른들의 대답에 어린왕자는 답답하여 착하게 그림을 그려주며 설명한다. 경험이 많은 어른들일수록 그 속을 잘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구태여 겉과 속을 구별하여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 시와 전쟁 시는 다르다. 평화 시에는 여러 가지 추측과 상상으로 이렇게 말하여 재미를 느끼고 저렇게도 말하여 깔깔거리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할 수 있겠지만, 죽느냐 사느냐의 백척간두에 선 전쟁 시는 그런 농으로 여유를 부릴 계제(階梯)가 없다. 전쟁 시의 잘못된 판단은 자기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송두리째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전쟁 시는 겉과 속이 다르니 그 속을 잘 간파하여 공격과 방어를 철저하게 준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빈곳을 파악하여 빈곳을 찔러 이겨야 한다. 이것이 전쟁이다.

외교 또한 전쟁이다. 오죽하면 ‘외교적 언사’라는 말이 있겠는가. 드러난 표현은 매끄럽고 아름답지만 속에 숨은 의도는 날카롭고 잔혹하다. 부드럽고 유쾌한 선언이야 매우 기분 좋아 들뜨지만 그 추구하는바 속셈의 이행과정에는 험난한 암투가 난무한다. 남북정상의 ‘판문점 선언’으로 온 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이 환호한다. 덩달아 그동안 남북의 적대적 긴장관계로 저평가 수준을 유지하였던 국내기업 주식도 널뛰었다. 마음은 벌써 북한으로 달려 나가고 상상을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는 허허실실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비하고 공격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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