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어느 여의사의 죽음 앞에
스물일곱 어느 여의사의 죽음 앞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3.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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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4회 동창 박쪻쪻의 딸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남”

띠링! 짤막한 벨소리만큼이나 간단한 문자를 보는 순간 어젯밤 교통사고 뉴스 화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혹시 그럼 그 사고로? 그렇다면 의대 다닌다던 그 딸이?’

“아이고, 그 가시내도 무슨 복이 그리 없니! 40도 채 안 된 나이에 남편 잃고 새끼들 셋을 혼자서 어찌 키웠는데. 그리 애터지게 살면서도 그래도 이기 공부를 잘해서 제 엄마가 그 재미로 살았는디. 쯧쯧… ”

전화통에서도 장례식장에 가는 차안에서도 안타까움을 토로 하는 한숨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영안실 입구에는 우리 동기들의 조화와 함께 대한의사회와 회장, 고려대 안암병원의사회와 고려대의대동문 등이 보낸 3단 조화가 약 스무개 가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빈소 1 화면에서는 아이유와 유이를 쏙 빼닮은 얼굴이 김효진(27세)이라는 이름으로 점멸을 거듭하고 있었다. 밑줄에는 제 언니와 동생 이름이, 그 밑에는 모(母) 라는 한자 옆에 낯익은 제 엄마 이름을 달고.      

영정사진 아래 흰 국화 한송이 놓고 그만큼의 기도를 하면서 상주로 서 있는 제 동생과 맞절을 하자니 5만원 넣어온 부의금 봉투가 가슴을 후려쳤다. 이번 주말 수원에서 있는 제자 결혼식에는 아버지도 대학교수고 신랑 신부도 다 교사라 빈손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 한 장 더 넣어올 걸. 다음 주에 제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큰시누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딸의 죽음 앞에 정작 당사자는 그까짓 부의금 액수가 문제가 아닐 것 인데. 그 형편을 좀 아는 입장이다 보니 치사하게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자연스레 돈으로 연결되었다. 옆방에서는 그 에미의 곡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쉰에도 여전히 개구쟁이 티를 못 벗는 춘이가 우리를 보면 더 울 것 같으니 다 모아서 가자며 1층 로비에서 맞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이고, 쳐다보기만 봐도 닳을 것 같아서 보기도 아까웠던 내 새끼야! 네가 이게 웬말이고? 이 엄마 곁에 있어야지! 네 엄마를 여기 두고 너 혼자서 어딜 가니? 아이고- 의사 되어 엄마 속병 다 고쳐준다고 그때까지만 참으래 놓고. 그토록 원했던 의사 다 돼서 네가 이 꼴로 이 엄마 앞에 오다니! 세상에 만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딨다냐! 하늘도 무심하지! 하나님도 야속하지…”

얼싸안고 울다가 뒤로 넘어 갔다가 바닥을 치며 나뒹굴면서도 이어지는 애절한 이 곡성은  그치질 않았다. 어떤 글쟁이가 머리를 싸매고 쓴들 이런 절절한 사변이 줄줄 터질까. 마치 신들린 사람이 주문을 절로 술술 푸는 듯했다. 저녁을 못 먹고 갔지만 차려내는 상 앞에 앉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자리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맞은편 빈소 2 화면에서는 94세 할머니 사진이 유족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뜨고 있었으니 에미 심장이 더 찢어질 수밖에. 화환의 개수는 이편이 다섯 배도 더 되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보기도 아까웠던 딸이니 그 이름 함부로 부르는 것도 얼마나 맺혔을 것인데. 의사 되기도 힘들지만 고려대의대 내과의사 되기가 어디 그리 만만한 과정인가.

봉사활동을 가도 그만 가까운 경로당으로 잡지. 왜 하필이면 이 추운 겨울에 광주에서 의령까지 간다고 그런 일정을 잡아서 이 아까운 인재를 이렇게 잃어버리다니! 그 엄마와 남겨진 가족들의 개인사로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인가!

이제껏 공부만 하다가 연애 한번 못하고 오직 의사자격증 그 한 장만 바라보고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올인을 했건만. 신은 이들의 소박한 그 꿈을 어떻게 한 순간에 이토록 허무하게 꺾어버릴 수가 있는가. 저녁도 굶은 채 동이 트도록 밤을 지새며 묻고 또 물어도 눈물만 난다.

그래도 무심한 시간은 잘만 흘러 어느새 40일이 지났다. 교통사고! 이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상흔은 이토록 참담하고 아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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