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네 가지 지혜의 분별
칼럼-네 가지 지혜의 분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5.08 18:3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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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 금인산 여래암 주지-네 가지 지혜의 분별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하며, 특히 고통 받고 있는 약자들을 보살펴주는 눈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우매하지 말아야하며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힘든 사람들을 돕고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이 땅에 왔기에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질에만 얽매인 인생은 가치가 없다. 우리는 뭐하나 크게 이루어 놓은 것 없이 늙어 가고 있고, 하루하루가 벽이며 낭떠러지다. 서둘러서 마음속의 번뇌 초를 잘라 버리고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갑게 살아가자.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필자의 동기와 후배 중에도 저세상으로 떠난 사람이 많고, 내가 주례를 봐주었던 사람도 예고 없이 저승으로 떠나갔다.

내 손으로 49재를 하던 그날의 슬픈 심정은 한밤중에 찬물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인생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 삶은 반드시 끝날 날이 온다. 우리는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껴야한다. 팔만대장경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이정표이지만 그 내용을 압축해보면 ‘욕심을 버려라’이다. 욕망이 클수록 고통도 클 수밖에 없다. 필자는 가능한 저금하기 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을 내놓고 있으며 절집 살림을 늘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부족해야만 분발하게 되고, 노력하는 가운데 발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날 때 갖고 나온 것 하나 없었고, 아무리 많은 것을 모아본들 죽을 때 갖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며 경제만능주의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서 성내고 탐욕부리며 고통과 번뇌 속에 살면서 가정이나 인간관계, 가치관과 마음의 여유까지 희생하며, 만족 없는 생활만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벗어나 주어진 삶에 만족해보자. 만족하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다. 많은 재물과 권력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여, 그런 것 때문에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불교는 지혜를 문혜(聞慧)들어서 얻고, 사혜(思慧)생각해서 얻고, 수혜(修慧)닦아서 얻으며, 증혜(證慧)깨달아서 얻는 네 가지 지혜로 분별한다. 중요한 것은 들어서 얻는 지혜보다 생각해서 얻는 지혜가 더 중요하고, 생각해서 얻는 지혜보다 닦아서 얻는 지혜가 더 중요하며, 닦아서 얻는 지혜보다 깨달음의 지혜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더 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큰 지혜는커녕 작은 지혜조차도 얻을 수가 없다. 매일 부지런히 네 가지 지혜를 닦아나가 보자.

강(江)은 처음부터 강이 아니었다. 여러 갈래의 도랑물들이 만나면서 강은 시작되었다.

사람도 살아있는 동안 강물처럼 하나라도 더 받아들여서 삶의 깊이를 더해나가야 한다.

한시바삐 인생무상을 깨달아 지혜로워지자. 육신이 늙으면 몸이 말을 잘 안 듣고, 몸이 정상이 아니면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짜증스러워지면 말소리가 낮아지고 어눌해진다.

말은 유창하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지혜는 뚫려야한다. 지혜가 뚫리면 귀신 떠난 성황당처럼 고요하게 정신을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러면 실수와 허물을 줄여갈 수 있다. 세월 속에 늙음을 잊는다는 것은 망령된 짓이며, 늙음을 탄식하는 것은 비루한 짓이다. 꽃은 모두에게 기쁨을 주지만 꽃이지는 순간 쓰레기로 전락한다. 인생도 그와 같아서 공부하지 않으면 어둡고, 위태로워진다. 삶이 늘 불안한 사람은 배움이 없기 때문이다.

배움이 없으면 자기주장만 강해저서 나만 편하면 되고, 남들이야 불편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혜의 증득으로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며 주변의 약자들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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