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놀이터의 기자회견
아침을 열며-놀이터의 기자회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6.12 18: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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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놀이터의 기자회견


가정의 달 오월을 막 보낸 지난 6월 1일 놀이터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차 위에 올라서서 한 전두환의 골목 기자회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 그가 목에 두른 하얀 목도리 때문에 내가 얼굴을 붉혔었다. 내 기억으로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하는 기자회견은 처음인 것 같다. 그걸 보며 겨우 오월은 피해주었군. 다행이야, 그게 어린이들에 대한 예의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스스로 의아했다. 그런데 그의 기자회견 내용을 곰곰 따져보고 나서는 그 의아함이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데서 할 짓은 아니었다.

양승태씨가 한 말은 얼핏 들어도 자기 입장에서만 나오게 되는 ‘자기말’이었다. 말에는 여러가지 말이 있다. 참말, 거짓말, 혼잣말, 속엣말, 고함, 옹알이…말을 이르는 말은 수도 없이 많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이 자기말은 거짓말이기 일쑤다. 양승태씨가 놀이터에서 한 자기말도 거의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짙다. 그는 재판개입은 없었다고 극구 부인했다. 또한 판사 뒷조사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두 가지는 양보할 수 없는 한계점”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자기말의 극치를 보여준다. 누구에게 무얼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인가!

‘현안 관련 말씀자료’라는 걸 그가 재임하던 때에 작성했다. 이 자료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 대법원이 행한 재판을 나열해 놓았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이 평평하게 균형을 이뤄 각각 제 구실을 해야한다. 사법의 최고 기관 대법원이 그러잖아도 권력의 축이 몰려있는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기울졌다면 막말로 볼짱 다본 것이다. 대법원장이라는 작자가 대통령에게 드리는 말씀자료 따위나 작성했다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서. 게다가 말씀자료라니! 삼권의 수장으로서 올바른 국정을 위해 서로 논의할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수장 대 수장으로 대통령과 대화자료라는 정도로 기록해도 되지 않을까? 또한 현안에 대한 드릴 말씀이 왜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 삼권의 수장으로 각각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지.

대법원이라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기관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결단코! 그 국정운영이 올바르면 그렇기 때문에 뒷받침할 필요가 없다. 올바르지 않거나 부실하다면 뒷바침해서 도와주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렇게 뒷받침해서 오늘날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가. 국정농단이라는 부끄러운 일을 뒷받침했단 말인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또한 양승태씨는 “재직시 있었던 일로 법원이 불행한 사태에 빠지고 부적절한 법원행정처의 행위가 지적된 데 대해 사법행정 총수로서 책임은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헀다. 이어진 그의 자기말을 보면 말로만? 하는 대꾸가 저절로 나온다. 그의 기자회견을 보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직전에 국민들을 향해 자기말을 하면 할수록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그것이 진실과 사실에 근거한 참말이 아니고 자기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퇴임했지만 국민을 위해 올바른 재판을 해야 하는 대법원장이 최고 권력을 위해 뭔가를 했음에도 뻔한 자기말로 스스로 꾀한 면죄부로 그냥 넘어간다면 법치국가가 아니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알리고 양승태씨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뤄야할 것이다. 대법원장이었다고 해서 법 앞에 패스해서는 안 된다. 특조단 조사에 불응한 까닭을 묻자 “내가 가야 하나?“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왜 안 가야 하는데? 전 대법원장이라서? 대통령에겐 말씀자료까지 마련해서 만나면서? 우리 국민은 저런 특권 의식을 제일 싫어한다고 귀뜀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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