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심(民心)
시론-민심(民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6.17 18: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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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민심(民心)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있다. ‘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라는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글이다.

최근 갑질과 흙수저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스스로 자긍하지 못하고 지금 하는 일에 확신이 없고 미래에 희망이 없을 때 이런 자조하는 말은 더욱 확산된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들이 그가 가진 권력을 노골적으로 휘두를수록 이런 부정적 풍조는 더 강렬하게 확산된다. 비례하여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식도 더욱 팽배해진다.

조금 영리하면서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안정적 고위직 관료에 오래 젖어 있으며, 선대의 재력을 탄탄하게 이어 받은 사람들은 한 시간 벌어 한 시간 먹고사는 서민(庶民)들의 애환과 처지를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심으로는 이런 삶의 형태를 경멸하고 천시하는 경향조차 강하다. 이들에게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꽃잎들의 찰나가 얼마나 기적 같고 아름다우며 그 흔들림과 사라짐이 얼마나 안타까운지를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한 푼 두 푼 애써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무슨 벌레나 말 못하는 짐승을 보는 양 하다. 그들은 사람을 앞에 놓고 고함지르고, 물 컵을 끼얹고, 몽둥이질로 즐기고, 급기야 개·돼지라 단언한다.

없이 사는 이들의 이 서러운 심사를 누가 알아줄까, 누가 쓰다듬어 줄까, 이리 눈 돌리고 저리 기대보고 하지만 언제나 손가락을 스치는 것은 헛헛한 바람결뿐이다. 이 스산한 민심의 틈새를 파고들어 선동가들은 한 결 같이 외친다. 내가 그대들의 아픔 마음을 씻어드리겠노라. 우리가 그대들의 빈 주머니를 채워드리겠노라. 우리 패거리가 당신들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드리겠노라.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저놈들은 독선적이고 악랄하고 권력에 도취되어 있는 빈껍데기 들이라고 꼬드긴다. 이들은 알맹이도 없는 공허한 빈 소리들을 허공에 던져 본다. 사람들이 걸려들면 대박이고 안 걸려들면 그만이다. 정치꾼의 선동은 늘 그렇다.

또한 자기 우월감에 도취된 쾌락주의 선동가(hedonistic demagogue)들은 큰소리로 외친다. 시대를 이끄는 사람은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라고 영웅주의 몽상가들은 이 허구적 수사를 매우 좋아 한다. 이 문구는 이번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여준 동영상에도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이고 허구인지를. 그것이 소수의 정치권력과 시장지배권을 공고히 하려는 얄팍한 술수인지를. 그것은 민중들을 개 돼지로 보는 인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임을. 그것은 화폭을 가득 채우는 인물화와 다를 바 없고, 말을 타고 칼을 높이 빼어들어 호령하며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의 영웅주의(heroism) 화풍에 불과한 것임을. 빈 여백이 대부분인 산수(山水)속에 그저 한 선으로 표시되고 한 점으로 찍힌 낚시꾼의 동양화와는 다른 것임을. 그대와 나와 만물이 혼연일체인 ‘우리의식(we-ism)’과 확연하게 다른 것임을.

다수의 이익이 없는 공의(公義)는 거짓이다.

한때 기업 프렌드리 정책으로 국민들을 배불리 먹여 살리겠다며 민심을 들끓게 하였던 이명박 대통령 이후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재벌은 살쪘고 서민들은 쪽박 찬 지경이 되었다. 개발독재에 의한 근대화의 향수를 국민들의 가슴에 소중하게 담아준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의 이름을 등에 업고 친박, 진박 등의 선풍(颴風)을 불러일으켰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사법부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들끓었던 민심은 어김없이 홍준표를 물 먹이고 자한당의 간판을 절멸의 자학(自虐)으로 몰고 갈 위기다.

하지만 어찌 알랴. 지금 지방선거의 열풍으로 너나없이 ‘친문, 친노’하며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이들이 어느 순간, 마치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처럼, 갑자기 그 사진들을 감춰버릴지를…

그렇게 되지 않기를 정말 간절하게 빌지만 변화무상한 민심의 바람을 어찌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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