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수의 품격
시론-보수의 품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01 18:5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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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보수의 품격


이번 6·13 지방선거는 처절하리만큼 자유한국당을 궤멸시켜 버렸다. 그나마 당적을 가진 의원들이 있으니 자유한국당이라는 간판이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막말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던 홍준표 대표는 트위터에서 작심한 마지막 막말을 내부를 향하여 쏟아 내었다. “이념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치열한 문제의식도 없는 뻔뻔한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으면 그 정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국회의원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념과 동지적 결속이 없는 집단은 국민들로 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 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국비로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이미지 좋은 초선으로 가장하지만 밤에는 친박에 붙어서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등 청산하여야 할 국회의원의 행태를 조목조목 열거하였다. 그의 마지막 막 말마따나 이대로 나가다가는 이어 오는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라는 간판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렇다. 홍준표 전 대표의 지적대로 우리는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에 대한 확실한 약속 없이 그저 막연하게 이 용어들을 편리한 대로 아무렇게나 사용하여 온 것 같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왼쪽에 앉은 급진 과격파 자코뱅당을 좌파라 하고, 오른 쪽에 앉은 비교적 온건노선의 지롱드 당을 우파라고 한 이래 좌파 우파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반면 프랑스 혁명이후 ‘자유와 진보’라는 드센 바람몰이로 계몽주의자들이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주창(主唱)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버크(1792)는 시민의 행복과 정의(正義)를 주장(主張)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암시하였다. 바크의 이런 주장 이후 보수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이어 최근 대한항공사태에서 보듯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비상식적인 소유에서 오는 불합리한 지배복종관계를 타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엥겔스(1848.2.24.경)가 공산주의 운동을 펼친 이후 진보라는 개념이 더욱 확고한 힘을 얻게 되었다. 어떻든 우리나라의 경우에 있어서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에 대한 뚜렷한 사상이나 이념 정립 없이, 저마다 자기의 기호에 따라 그때 그때 입맛에 따라 제멋대로 이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보수·진보’라는 ‘개념’보다 일단 이 ‘소리’들이 더욱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엔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의 의미가 없다. 1988년 노태우 정권의 제6공화국 등장이후 누가 먼저 사용하였는지도 모르는 사이 그저 정치적 수식어로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어 1990년 1월 보수대연합론이라는 기치(旗幟) 아래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이 통합하여 거대여당 민자당이 나타나 득세하면서 그냥 ‘보수라는 말’이 우리들에게 익숙한 ‘소리’로 자리 매김하였다. 즉 개념이 채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냥 말만 먼저 떠돌아다니고 있는 셈이다. 진보 역시 마찬 가지다. 그리하여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나 진보의 콘텐츠가 없거나 빈약한 상태에서 이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 측에서 즐겨 내뱉고 있는 ‘국가와 국민’이라는 말은 미국·유럽의 경우 진보측이 좋아하는 사회주의 개념이며, ‘개인의 개성과 자유, 창의’를 목 놓아 외치며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즐겨 내뱉는 말은 사실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는 보수주의의 용어였다. 이 용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착종(錯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충실한 이념과 치열한 문제의식’없다는 홍준표 전 대표의 위와 같은 지적은 일면 타당한 구석도 있다.

그리하여 진보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보수를 재정립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형식적이나마 ‘보수의 품격’을 먼저 확립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품격’은 마음 생각 사상 등이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거꾸로 ‘말과 행동’이라는 형식을 먼저 정제함으로써 그 알맹이를 굳힌다는 형식적 효과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목을 친다.”느니, “개××”라느니, “까부순다”느니, “피를 부른다”느니 하는 살벌한 소리들은 보수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소리들은 절규하는 저항가들의 투쟁구호일 수는 있으나,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품위와 격조로써 실천해나가는 보수의 언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수의 품격’이 새삼 그리워지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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