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장마
아침을 열며-장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8.07.03 18:5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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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장마


바야흐로 장마철이다. 출신은 못 속인다는 말이 맞는 건지. 아니면 소설을 쓰는 게 직업이라서 그런지. 좀 그렇긴 하지만 여지없이 장마철이 되면 윤흥길 선생님이 쓴 소설 ‘장마’가 상기된다. 장마는 대표적인 육이오 후기소설로 우리 소설가들이 공부하는 기본 텍스터나 마찬가지다. 유려한 문장과 긴밀한 구성과 적확한 인물 창출과 배치 등 무엇 하나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다. 북한쪽에 동조하는 아들을 둔 안 사돈과 국군쪽에 아들을 둔 안 사돈이 갈등하다 끝내 화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화해와 화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할 때마다 감동이니까.

산을 타고 북한으로 가던 아들이 죽었을 것 같다는 전언을 들은 한 사돈이 몸져누웠다. 때는 장맛비가 쏟아지다 슬그머니 그치자 무더위가 몰려온다. 그 무더위와 함께 온 것이 또 있었다. 천천히 담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온 그것은 커다란 능구렁이였다. 이에 또 다른 안 사돈이 그 능구렁이가 산에서 죽은 이의 원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몸져누운 사돈의 머리카락을 태워 정성들여 제를 올려준다. 그러자 능구렁이는 집안을 둘러보곤 슬그머니 왔던 담을 넘어 사라진다. 뭄을 추스린 안 사돈이 또 다른 사돈에게 제를 올린 걸 감사하며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선생의 장마의 미덕을 오늘 하나 더 발견한다. 바로 삶과 죽음을 더없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었다. 원통하게 죽은 이는 살아있을 때 사랑하는 것들이 집약되어 있는 '집'으로 능구렁이가 되어서까지 돌아온다. 집약의 집약 체인 어머니의 머리카락 향을 흠향해서 작별의 의식을 하고 나서야 갈길을 떠난다. 삶과 죽음은 원래 하나지만 우리는 사후 세계나 죽음에 대해선 벽안시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무장무장 생각하기를 미루다가 그것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나름의 대처를 한다. 어쩌면 그런 현상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죽는 건…끝이니까.

끝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죽하면 곁불도 쬐다 안 쬐면 서운하다고 했다. 특히 연애를 하다가 끝이 나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비애를 맛본다. 심지어는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하긴 끝나서 좋은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험기간이 끝나면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풀어진다. 수능을 마치고 이제 더 이상 수능공부를 안 해도 되게 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성적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재수를 하려고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끝이 안 났으니 기분도 나아지지 않는다. 차제에 이 나라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화이팅!

장마 중에 장마 얘기를 하려다가 장마얘기는 간데없이 인생 이야기로 가고 있는데 나쁘지 않을 듯. 인생 아닌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장마철엔 비가 많이 오고 자주 와서 생활이 불편하다. 또한 습도가 많아서 온몸이 기름을 뿌린 것처럼 끈적거린다. 샤워를 해도 그때뿐이다. 그렇다고 딴 나라 딴 세상으로 가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재미도 여름에만 즐길 수 있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차가운 물을 정수리에서부터 온몸에 끼얹어보라. 어이구 차가워라, 하는 소리가 절로 비명처럼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냉장 수박을 퍽 잘라서 우적우적 사사삭 먹어보자. 부채질을 슬슬 하면서 수박을 냉장고에 채워 넣어준 식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수박 누가 사다 놨어요? 누구긴 누구냐, 이 에미지. 감사 감사요,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 하고 말이다.

연중 날씨를 돌아보면 궂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다. 그래도 눈비 안 오는 날이 훨 많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안 좋은 날도 있지만 좋은 날이 훨 많다. 아니 좋은 날이 훨 많도록 나뿐 속에서도 좋은 걸 발견해내자. 우리 각자가 매순간 좋은 걸 더 많이 창출 할 수 있다. 우린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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